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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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노희경] 할머니와 마음 나누기

입력 2019-07-19 12:05:01


지난 4월부터 고등학생 딸과 함께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어르신 말벗 봉사’를 하고 있다. 매월 한 차례 이영희 할머니 댁을 방문해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이른바 독거어르신이다. 가정을 방문해 할머니의 정서를 지지해주는 게 봉사활동의 주목적이다.

1953년생인 할머니는 훨씬 연로해 보인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허리디스크로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뇌졸중으로 말하는 게 어눌해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할머니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린다. 늦은 밤 폐휴지를 줍거나 병원 갈 때를 빼곤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원, 복지관에서 지원하는 5만원 외에 박스나 헌옷가지 신문 깡통 등을 고물상에 내다 팔아 생긴 수입으로 생활한다. 한 달 바짝 모아 팔아봐야 5만원 정도다. 그런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예전엔 고물상에서 1㎏에 100원을 줬는데, 요즘엔 40원밖에 쳐주지 않는다. “내가 죽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쓰나”며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 모습을 기억한다.

이영희 할머니처럼 ‘단절의 벽’에 갇혀 지내는 독거어르신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김승희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18년 독거노인 사회적 관계망 조사결과 현황’을 보면 독거노인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독거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독거노인의 절반 이상은 사회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서 사회활동이란 종교시설이나 경로당 복지관 등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영희 할머니도 그런 경우다. 아무런 왕래조차 없다면 외로운 노인들이 더 우울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우울증이 심화되면 단절의 벽을 쌓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독거노인은 고독사의 비극을 겪을 수 있다.

할머니와 마음을 나누고 다독일 수 있는 말벗 봉사, 즉 정서를 지지하는 활동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 어르신을 찾아가 그분의 환경을 살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는 위로, 용기를 얻는 듯하다. 처음 이영희 할머니는 낯선 모녀의 방문에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만 할 뿐 말문을 닫았다. 겨우 묻는 말에 짧은 답을 할 뿐이다. 그런 상황이 어색했는지, 딸이 유튜브로 방탄소년단(BTS) 영상을 할머니에게 보여줬다. BTS를 TV에서 봤다는 할머니 말에 딸은 더 신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헤어질 때 할머니는 딸을 끌어안고 섭섭하다며 한참을 우셨다. 이후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집에서 박스 깡통 등 폐휴지를 챙겨간다. 할머니와 그것들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딸에게 학교는 잘 다니는지, 친구들은 많은지, 시험은 잘 봤는지를 먼저 물었다. 또 천장에서 물이 샌다, 갑자기 집안에 바퀴벌레가 생겼다며 투정도 부렸다.

월드비전 회장을 지낸 박종삼 목사는 ‘누가 좋은 이웃인가’ ‘어떻게 좋은 이웃이 될까’를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영성이라고 했다.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홀로 비극적 죽음을 맞는 독거노인들을 보면서 “복음에 구멍이 뻥뻥 뚫려 그런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한 말이다.

안전망에 구멍이 생겼다면 교회가 그것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한 이웃들을 돌봐야 한다. 교회 안에서 구역이나 셀 모임만 할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독거노인들의 말벗이 돼줘야 한다. 인천 서구 징검다리교회는 매주 금요일 독거노인들에게 밥과 국을 만들어 배달하며 안부를 챙긴다. 서울 노원구 상록교회는 아예 사회봉사팀을 꾸려 냉장고를 청소하고 하수구를 뚫어주는 등 어르신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집안의 곳곳을 정리한다. 지역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교회야말로 외로운 어르신들의 피난처요, 최고 안전망이다.

지난 토요일 이영희 할머니를 만나고 오는 길, 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옷이 축축했다. 딸에게 물어보니 할머니 침이란다. 틀니가 불편해 입에서 끼웠다 빼기를 반복하던 할머니가 침 묻은 손으로 딸의 어깨를 토닥였던 거다. 엄마의 놀람에 딸은 별일 아닌 듯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예뻐하시는 것 같아. 옷은 곧 마를 텐데 뭐.” 어느새 이영희 할머니와 딸은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노희경 미션영상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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