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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집 키운 이란핵… 트럼프 경고에 “어디 한 번 해봐”

입력 2019-07-20 04:05:01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타결됐을 때만 해도 이란은 북한의 ‘모범 답안’이었다. JCPOA가 최종 타결된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환영한다”며 “북한이 하루빨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와 9·19 공동성명에 따른 비핵화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도 이란의 뒤를 따라 핵을 포기하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북핵 문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톱다운’ 소통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나가는 중이다. 반면 이란 핵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JCPOA 탈퇴 선언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JCPOA 체결 이전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과 이란의 엇갈린 운명

JCPOA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기관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란은 주력 수출품인 석유 판로가 틀어 막히면서 2012년과 2013년에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경제난에 국민적 불만이 고조되면서 2013년 비핵화를 주장한 개혁파 성향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보수파를 꺾고 당선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와 함께 이란과의 대화에도 적극 나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로하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미국과 이란 정상이 통화를 한 건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이었다. 2015년 양국 간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란 핵 동결을 골자로 하는 JCPOA 체결로 이어졌다. 합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에 독일을 추가한 ‘P5+1’이 이란과 체결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식 해법’을 북한에도 적용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북한은 이란에 비해 대외 교역량이 많지 않고 정치적 자유도 저조하기 때문에 경제제재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등 각종 전략적 도발에 초강력 경제제재로 응수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 역시 기본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법을 계승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압박 노선은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결실을 거둔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해체를 대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를 요구하다가 회담 결렬을 맞았다.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미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반면 이란 핵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왜 JCPOA를 뒤집었나

트럼프 대통령이 JCPOA 탈퇴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이란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이란에 적대적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JCPOA가 ‘최악의 합의’라며 이란에 핵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결국 지난해 5월 JCPOA 탈퇴를 선언하고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미국을 제외한 JCPOA의 모든 당사국이 격렬히 반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바꾸지는 못했다. 킴 대럭 전 주미 영국대사는 본국에 보낸 비밀 전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감정 때문에 JCPOA를 뒤집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JCPOA 파기에 적극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턴 보좌관은 무력 개입을 불사하고서라도 이란 정권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슈퍼 매파’다. 그런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선임 외교안보 참모에 오른 순간 JCPOA 파기는 이미 기정사실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공습해야 한다는 볼턴 보좌관의 조언만은 받아들이지 않고 외교적 해법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출구 보이지 않는‘강 대 강’ 대치

트럼프 대통령은 JCPOA를 대체하는 좋은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아직은 전망이 어둡다. 이란은 미국이 JCPOA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미국과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이란 국민들 역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여기고 있다. 온건파 성향으로 JCPOA를 이끌어낸 로하니 대통령조차 미국을 맹렬히 비난하며 강경파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란은 JCPOA의 기본 틀을 존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의무사항을 하나둘씩 깨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JCPOA 파기를 철회하도록 단계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이란은 JCPOA가 규정한 우라늄 보유량 한도 300㎏을 이미 초과했다. JCPOA가 정해놓은 우라늄 농축도(3.67%)를 지키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된 상황이다. 이란은 최근 미군 무인정찰기(드론)가 자국 영공을 침해했다며 대공 미사일로 격추했다. 미국은 보복 공습을 계획했다가 막판에 철회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초강경 발언과 달리, 미국도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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