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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포츠] ‘1인 1 스포츠’도입… 함께 땀 흘리며 체력도 성적도 쑥쑥

입력 2019-07-19 04:10:01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지난 15일 외대부고 체육관 앞에서 열린 국궁 수업 중 활시위를 힘껏 당기고 있다. 용인=최현규 기자
 
학생들이 체육관 안에서 라크로스 장비를 착용한 채 팀을 나눠 연습경기를 벌이고 있다. 용인=최현규 기자
 
호신술·유도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용인=최현규 기자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시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외대부고) 체육관에는 라크로스 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 10여명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라크로스는 헤드 부분에 그물이 달린 하키채 모양의 스틱으로 고무볼을 운반해 골대에 꽂아 넣는 스포츠다. 서로에게 스틱을 휘두르며 장난치던 학생들은 곧 상기된 얼굴로 주섬주섬 장비를 꺼내 입었다. 가슴을 보호하는 체스트 패드, 팔을 감싸는 암패드, 갈비뼈를 보호하는 립패드에 헬멧과 장갑까지. 한 학생이 “라인드릴 시작하자”고 외치자 무더운 날씨에도 5개나 되는 보호 장비를 껴입은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줄로 서서 패스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볼을 엉뚱한 곳으로 패스하거나 패스한 볼을 놓칠 때면 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1~1.8m에 달하는 스틱을 든 학생들은 능숙하게 ‘크래들링’ 연습도 이어갔다. 크래들링은 그물 속의 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스틱을 좌우로 회전시키는 기본기다. 스틱을 빠르게 움직이며 네트 속 볼에 집중한 학생들의 목줄기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간단한 연습 경기도 이어졌다. 두 팀으로 나눈 학생들은 먼저 경기장 중간에 볼을 놓고 ‘페이스오프’를 진행했다. 양 팀에서 두 명의 학생이 나와 머리를 맞대고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휘슬이 울리자 한 학생이 재빨리 스틱을 휘둘러 볼을 따냈다. 곧 팀원과 패스를 주고받은 학생은 능숙한 크래들링으로 상대 진영을 돌파한 뒤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골을 넣은 팀 학생들은 서로를 얼싸 안고 환호했다.

외대부고는 2005년 개교와 동시에 ‘1인 1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종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면 매주 월요일 7·8교시에 2시간씩 소그룹 단위의 체육 활동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1년 동안 해당 종목에 집중해 기본기부터 연마하며 전문성을 기른다. 라크로스도 1인 1체육 종목 중 하나다. 국내 고등학교 중에선 외대부고가 처음 시작한 종목으로, 외대부고는 지난해 고교 춘계·추계리그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이다. 라크로스 외에도 미식축구와 비슷한 플래그풋볼, 농구, 축구, 국궁, 호신술·유도, 요가, 테니스, 태권도 등 8개 종목이 더 있다.

1인 1체육을 시행하게 된 이유는 스포츠가 갖는 정신적·철학적·사회적 가치 때문이다. 입시 스트레스를 운동을 통해 발산한다는 정신적 가치 외에도 학생들은 스포츠를 통해 규칙을 준수하고 예의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다른 학생들과 운동을 통해 부딪치면서 인간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프로그램 도입 과정에 참여한 박영신 외대부고 예체능과장은 “처음엔 기술도 모르고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대회에 나가 자신감 있게 골까지 넣고 온다”며 “스포츠를 통해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형사립고인 외대부고에서 입시 관련 수업이 아닌 체육 수업을 따로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엔 학부모들의 반감도 심했다. 주요 대학 입학 시 체육이 점수로 반영되지 않는 데다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목격한 학부모들은 오히려 자식들을 응원하는 우군이 된다. 박 과장은 “운동하는 것을 반대하던 학부모들이 아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대회에 응원까지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운동이 성적 향상에 도움을 준 케이스도 있다. 라크로스 수비수로 고교리그에도 참여했다는 1학년 김종민(16)군은 “과거엔 공부할 때 인터넷을 기웃거리느라 한 번에 40분밖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운동을 시작하고 1시간 반 동안 다른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군은 중간고사에선 같은 반 24명 중 18등이었지만 기말고사에선 7등까지 성적을 향상시켰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우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호신술·유도 수업을 듣는 1학년 한지윤(16)양은 “평소 한 마디도 안 해본 친구들과 유도복을 입고 함께 구르면서 대화를 더 하게 된다”며 “1인 1체육 덕에 체력뿐 아니라 친구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국궁 수업을 듣는 김현수(16)양도 “다른 데서는 배울 수 없는 국궁을 배우면서 바른 자세를 얻고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갖게 돼 좋다”고 말했다.

외대부고는 1인 1체육 외에도 ‘방과후 선택수업(Elective Track)’이란 교육과정을 별도로 운영한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 학생 5명 이상이 신청하면 해당 종목을 방과 후에 더 배울 수 있다. 현재 150여명의 학생들이 8개 종목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각 종목을 연마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기도 한다. 선후배가 함께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연습 경기를 즐기고 대회에 나간다. 개설된 체육 동아리만 20개다.

박 과장은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교에서도 라크로스 팀에 들어가 함께 경기를 하자고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며 “고등학교 때 전문적으로 한 종목을 배웠기에 20~40년간 계속 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평생 체육의 기틀이 다져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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