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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송세영] 불의한 이익

입력 2019-07-26 12:05:01


가습기살균제를 딱 한 번 사본 적이 있다. 2003년쯤이었다. 초음파 가습기가 유해세균의 온상이라고 해서 세균 번식 우려가 적은 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인으로부터 초음파 가습기를 선물로 받았다. 디자인이 세련된 데다 소음이 적고 분무량도 많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하지만 세균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매번 초음파 진동자를 청소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그 무렵 대형마트에 갔다가 가습기살균제 판매대를 봤다. 간편하게 유해세균을 없앤다는, 혹할 수밖에 없는 광고 문구에 1+1 세트를 구입했다. 다행히 겨울이 끝나가던 무렵이어서 한두 번 사용하고는 창고에 넣어뒀다. 그 후로는 이사를 가고 하면서 잃어버렸는지 사용한 일도, 본 일도 없다. 양파를 물컵에 담아 키우거나 하는 천연 가습 방법을 어른들께 배운 뒤로는 가열식이든 초음파식이든 가습기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돼 살균제를 살 일도 더 이상 없었다.

그때 만약 가습기살균제를 초겨울에 사서 겨우내 사용했더라면, 그다음 겨울에도 계속 초음파 가습기를 쓰면서 살균제를 사용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창 어렸던 두 아이에겐 특히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폐질환·천식을 앓게 된 6476명, 목숨을 잃은 1421명과 유가족의 아픔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만인이 깨어 있는 평화 시기에 전쟁이나 테러에 맞먹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501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고 937명이 부상당해 6·25전쟁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낳았다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보다 피해 규모가 크다. 피해자들은 ‘묻지 마 범죄’처럼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누구든 아무런 잘못도 이유도 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셈이다.

사건 진상이 밝혀지는 데는 제품 출시 후 25년, 서울아산병원에서 2011년 의문의 폐질환으로 4명이 숨지면서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의혹이 본격 제기된 이후로도 8년이 걸렸다. 과학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대규모 피해를 남긴 치명적인 범죄의 진상이 아주 오랫동안 은폐된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되 견제와 균형, 감시로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유지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건의 전모는 더 놀랍다. 최초의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된 1994년은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돌파한 해였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의 척도인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겉으로는 번드레한 고도 경제성장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 이면은 부끄러울 정도로 지저분하고 어두웠다.

기업은 유해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제품부터 내놓았다. 유독성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도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공직자들은 한통속이었다. 뒷돈마저 오갔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34명이지만 직간접으로 연루된 사람은 수백 명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부정과 불의를 묵인하거나 방관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한국교회에 중요한 성찰의 소재를 제공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불의한 이익을 좇는 이들의 결탁과 야합에 있고, 이를 막아내거나 조기에 적발하지 못한 우리 사회 시스템에 있다. 성경은 불의한 이익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출 18:21)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겔 22:27)

하지만 부정부패 관련 뉴스에는 장로나 집사 등 기독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사역하면서 부정한 돈의 유혹에 빠지는 목회자도 있다. 한국교회가 성경 말씀과 달리 불의한 이익을 좇는 자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는지, 이 같은 세태를 방관하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기독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면 불의한 이익을 좇고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며 뒷돈을 주고받는 총체적 부정부패 시스템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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