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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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티 테이블] 배신, 신뢰의 추락

입력 2019-10-04 12:05:02




배신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다. 배신은 인간의 마음에 깊은 자상(刺傷)을 입히는 감정이다. 사랑했던 배우자, 믿었던 친구, 존경했던 스승, 아끼던 제자의 관계처럼 배신은 신뢰 관계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배신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컸다면 상처는 말할 수 없이 깊다.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배신은 두터운 인간관계를 붙인 접착제를 떼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저서 ‘배신’에서 “배신이 성립하려면 그 관계에 상처가 생겨야 한다…오직 심각한 신뢰의 심각한 파괴만이 배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소중하게 여긴 사람의 배신은 두터운 인간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을 9층으로 구분해 놓았고, 배신자를 가장 지독한 지옥에 둔 것을 보아도 배신이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배신의 가장 부정적인 영향은 깊은 불신을 남긴다는 것이다. 배신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배신의 상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독교 상담학자 데이비드 시맨즈는 “상처받은 기억이 지닌 진정한 비극은 기억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아픔이 아니라 아픔과 압박 때문에 인간관계와 삶에 잘못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신을 당한 사람이 피해자이지만,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으며 자신을 잘 돌봐줘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일어난 일을 부정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배신의 상황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초기의 충격을 이겨내고 일어난 일에 대해 더욱 명확한 관점을 가지기 위해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상담가들은 치유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면서 용서를 위한 길을 찾으라고 권한다. 용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라는 뜻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조건적인 수용의 경험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믿을 만한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배신이 있었다. 그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배신은 ‘유다의 배신’이 아닐까. 십자가 수난을 여는 날 밤,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고 예고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의 배신을 알고 계셨지만 아무 말씀 없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셨다.

인간의 배신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진행된다. 사랑했던 제자들로부터의 배신과 거절을 당한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거부하는 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 자신의 품으로 우리를 불러들이고 계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워서 잠가둔 문을 통과해 들어오셨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잠가둔 방어막과 문을 뚫고 바로 걸어 들어오실 수 있다. 그분은 지금도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주실 수 있다.”(데이비드 시맨즈의 ‘기억의 치유’ 중에서)

예수님은 배신을 거듭하는 우리에게 “그래도 너는 내 아이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피투성이가 된 마음으로 절뚝절뚝 피를 흘리며 외롭게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신다.

타인의 배신으로 상처 난 가슴의 모든 조각을 향해 예수님은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든 틈은 있기 마련이며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조각난 것들이 처음처럼 감쪽같이 붙여질 수는 없지만, 깨지지 않았다면 결코 나지 않았을 소리를 낼 수 있다. 종에 금이 가지 않았다면 결코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화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팠던 그 일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상처가 세월이 지나면 무늬가 될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롬 5:3~4).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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