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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조정민] 정치와 통치의 간극

입력 2019-10-03 12:05:01


몸의 한 부분이 통증을 자각할 때 흔히 병의 전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특정 신체 부위나 장기는 통증이 미미하거나 없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을 발견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증, 고통의 증세는 괴롭지만 고마운 것입니다. 생활 환경 가운데서도 이런 시그널이 매일같이 울립니다. 단순한 소란과 소요일 수도 있고, 대형 사건과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의 중요한 전조들입니다.

질병이건 사회 문제이건 대처해야 할 적기가 있습니다. 너무 일찍 서두르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너무 늦게 대응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고, 문제를 예견하고 미리 대처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를 너무 늦게 발견하거나 문제인식 수준이 낮아 간과하고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정치인과 국민의 의식은 어느 수준일까요?

의사는 병을 진단하고 치유합니다. 인명을 다루기에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야 의사면허가 주어집니다. 정치인은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시대 정치인들은 이를 위해 어떤 사전 준비를 하며 어떤 자격 심사를 거친 사람들입니까? 혹시 우리가 그 책임을 가볍게 생각해 너무나 허술하게 그 자격을 인정한 것 아닙니까?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나라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입니다. 정치인에게 권리가 이양된 것은 전 국민, 전 국토의 안전을 위함입니다. 일부 국민과 일부 영토가 아닙니다. 내 편과 내 지지 세력의 안전이 아닙니다. 이 일을 위한 정치와 통치는 기능 면에서 대동소이합니다. 통치도 ‘도맡아 다스리는 일’입니다. 두 단어를 쓸 때 정치는 당파적 이익에 치우쳐 거부감을 주고, 통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 현실의 선례 때문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통치가 기준입니다. 왜 성경에 정치라는 말이 없을까요? “그가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삼상 8:14-17). 물론 십일조보다 더 많이 거두어갑니다. 종으로 부리기보다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정치가 아니라 언제나 섬김의 통치를 구현합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권력자입니다. 왕이며 황제이며 통치권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왕을 요구하자 선지자 사무엘이 근심하며 탄식합니다. 하나님은 떼를 쓰는 인간에게 져주십니다. 져주시지만 결과는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경고의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현실 정치는 여러 시대 여러 국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더욱이 선동정치가들은 한결같이 대중의 편견과 감성에 호소하여 군중을 선동함으로써 공익을 위장하여 사익을 도모했습니다. 끝내 백성과 국가의 운명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에는 파멸로 내몰았습니다.

근대 정치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합니다. ‘그’의 통제할 수 없는 권한이 초래한 결과를 수없이 목격한 때문입니다. 언론은 끊임없이 ‘그’가 원치 않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 작동을 감시합니다. 문제는 선동정치가들은 언제나 언론 통제와 감시 기능부터 마비시켜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차례로 권력을 ‘그’와 ‘그들’ 중심으로 다시 통합합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또 다시 도처에서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통치’의 신앙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신념을 위해 전부를 걸고 지켜냈을 때만이 그 가치를 누릴 뿐입니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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