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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당당하면 재판 나오라”… 역사 산증인 이용수 할머니의 외침

입력 2019-11-14 04:10:0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왼쪽) 할머니가 1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일본은 당당하면 재판에 나오라!”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향해 울음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를 해야 한다”며 “커가는 학생들, 세계의 학생들에게도 이 역사를 공부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TF와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첫 재판(변론기일)을 1시간여 앞두고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직후 이 할머니와 이옥선, 길원옥 할머니 3명은 휠체어를 타고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유석동) 법정에 출석했다. 피해자들이 2016년 12월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에 처음 열린 재판이다. 일본 정부 측은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은 20여분 만에 종료됐다.

이용수 할머니는 발언 기회를 얻자 휠체어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은 채 “저는 아무 죄가 없는데 14살에 일본에 끌려가서 전기고문 등을 당하고 1946년에 돌아왔다”고 호소했다. 이어 “일본은 죄가 있다. 죄가 있어서 재판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며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을 위해 30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일본 정부는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할머니들이 죽길 바라고 있다”며 “죽어도 이건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민변 측 변호사는 “피해자들 연령을 고려하면 마지막 소송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을 제기한 건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가치를 회복하려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반인륜적 범죄를 사법부가 공적으로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 법원이 송달한 소장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재판 절차를 지연시켜왔다.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한 헤이그협약을 근거로 한 대응이었다. 이에 법원은 상대방이 재판에 불응할 때 법원 게시판 등에 게재한 뒤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해 지난 5월 9일 효력이 발생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같은 달 21일 소송이 주권면제 원칙에 의해 각하돼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향후 재판 쟁점은 주권면제 원칙의 적용 여부가 될 전망이다. 이는 한 주권국가에 대해 타국이 자국의 국내법으로 민·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재판부는 “국가(주권)면제라는 장벽을 넘어가려면 대리인단이 설득력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민변 측은 “이탈리아 대법원과 최고재판소, 우리 헌법재판소는 (주권면제 원칙을 근거로 한) 재판권 행사의 제한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시했다”며 위안부 제도 같은 불법 행위에는 이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회견에서 “우리는 위안부의 역사를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한다. 일본은 방해하지 말고 협조하라”고 했다. 유네스코는 2017년 10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보류하고 양국 간 대화를 통한 합의를 촉구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2년 넘게 불응하고 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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