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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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의논 없으면 경영이 무너진다

입력 2020-01-09 12:05:02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탈원전 정책을 주장했고 대통령 당선 후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8년 6월 16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긴급이사회를 열어 경제성을 이유로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키로 결정했다. 2019년 12월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월성 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를 승인했다.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해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원전 전문가와 업계는 한수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가 조작된 발전원가 및 판매단가, 자의적으로 만든 원전 이용률에 기초한 정치적 판단이라며 역사적 범죄행위라고 한다. 이번 원안위에서는 야당 추천 위원 2명은 반대했지만 정부와 여당 추천 위원 5명이 찬성해 월성 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결정했다. 야당 추천 위원과는 달리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사회복지학 행정학 법학 의학 지질학 전공자 등으로, 원전 안전 전문가가 아니다. 다수를 차지하는 비전문가들에 의한 원안위 결정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심하고 비판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고리 원전 1호기를 가동한 1978년부터 지금까지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없다. 한국형 원전이었다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해변의 쓰나미로 격납용기가 뚫려 방사선이 유출되는 원전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우리 3세대 원전인 APR1400이 프랑스 일본 등도 받지 못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 인증을 받았다. 원전 안전성 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문 대통령도 2018년 3월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국의 원전 경쟁력은 (세계) 최고’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해 11월 체코 순방 때도 “한국은 현재 원전 24기를 운영 중이고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에선 “한국은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높은 실력과 안전성을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의 발전원가가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나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경우보다 훨씬 저렴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흑자이던 한국전력공사가 적자 기업으로 추락했다. 전기 생산단가 증가에 따른 전기요금 폭등과 기업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 또 탈원전 정책은 한국 원전의 인적·물적 생태계를 파괴하고 원전 수출과 부품 공급에 따른 국가 이익을 훼손한다. 탈원전 기회비용이 1000조원 이상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2018년 한 해 동안 태양광 시설로 축구장 3300개 규모(2443만㎡)의 산지가 훼손되는 등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 미세먼지 퇴출과 온실가스 대책은 탈원전 정책을 관철하는 한 불가능하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공동체의 이성적 결정이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리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의사나 말 한마디가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화하며 간극을 좁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의 요체다. 특히 전문적·기술적 영역에선 이성적 성찰과 합리적 숙의(熟議)를 통해 민주적 결론을 도출하는 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고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훌륭한 지도자는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소통한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자신과 경쟁하던 비판자들로 내각을 구성하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했다.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높게 평가되기도 하는 중국 당태종도 목숨 걸고 잘못을 지적하는 위징을 곁에 두고, 그와 소통했다.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면 즉시 시정한다. 공자는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 했다(過而不改 是謂過矣).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공할 수 있다(잠언 15장 22절).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으면 지혜롭게 된다(잠언 19장 20절). 원전 정책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전문가를 포함한 국민의 숙의와 소통을 통해 국민적 합의 아래 결정·추진돼야 한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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