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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당위는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

입력 2020-07-07 04:10:01


21대 국회 원 구성의 핵심 쟁점은 법사위였다. 더불어민주당은 22년 동안 야당이 맡았던 법사위원장을 되찾아와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이 법안을 제출해도, 야당 법사위원장이 트집을 잡으면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사위원장 확보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민주당 단독 법사위는 지난달 1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불러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따졌다. 일과 개혁이라는 명분이 아군의 억울함 해소와 말을 잘 듣지 않는 검찰총장 비판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검찰 개혁이나 사법 개혁은 힘없는 서민들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받지 않도록 만드는 제도적 작업이다. 한 전 총리의 억울함이나 윤 총장의 무리한 수사 방식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으나, 두 사람이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을 상징하는 최우선적인 주제는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를 만들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수정당의 비례의석 수가 늘어나 양당 독식 구조가 줄어들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역시 문제는 통과 다음이었다. 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들고 나왔다. 처음에 이를 비판하던 민주당도 결국 비례위성정당 급조에 나섰다. 그 결과 21대 국회는 1987년 소선거구제 개헌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사실상 양당 구조가 됐다. 정치 개혁이라는 당위론은 의석수라는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 반포 아파트 대신 청주 아파트 매각을 선택했을 때 여러 말들이 나왔다. 노 실장의 ‘합리적인 선택’을 이해하고 싶다. 청주 아파트와 재건축을 앞둔 반포 아파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 없다. 노 실장의 선택에는 여러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다주택 고위공직자들도 다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불가피하게 두 집 살림하는 세종시 고위공무원, 부모님 집이나 가족의 집을 본인 명의로 해둔 경우, 팔려고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았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전부 1주택자가 되더라도, 지금의 부동산 문제가 풀릴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정부는 자꾸 아파트를 팔라고 했다. 하지만 값이 계속 오르는데, 정부의 조언이 효과가 있을 리 없다. 21번 나왔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욕망을 참으라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욕망, 합리적인 욕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민주당은 지난 2일 35조원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와중에 13개 지역 민원사업 3571억원을 끼워 넣었다. 지역구 의원이 지역 민원을 국가 예산에 반영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코로나 국난 극복을 위한 추경안에 지역 민원사업을 끼워 넣은 행위는 비판받을 여지가 컸다. 통합당이 이 부분을 지적하고 언론이 비판에 나서자, 민주당은 곧바로 3571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끼워 넣기, 비판, 전액 삭감으로 이어지는 이런 과정이 민주적인 절차다. 민주당 의원들의 욕망은 견제를 통해 제어됐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다. 해야 한다는 당위를 알지만 실천하긴 쉽지 않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국회의원도, 진보적 교수 출신 전 고위공직자도 이런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견제가 필요하고 타협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철인(哲人)을 전제하지 않는다. 정책은 사람들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고, 비판과 반대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당위를 앞세운 정책들이 썩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난 3년간 검증됐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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