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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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일어서는 사람들

입력 2020-10-27 11:05:03


어느 교회 청년 모임에서 말씀을 전했다. 잔뜩 주눅 들어 사는 청년들에게 이미 그 시절로부터 훌쩍 떠나온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간곡한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젊은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삶은 본래 힘든 것이다. 힘들지 않으려니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에 순치된 채 살면서 세상만 탓하지 말라고, 불온함이 사라지면 정신적 퇴화가 시작된다고. 세상이 제시하는 가치 기준을 성찰조차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비루해진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타락시킨다’는 말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순간 자유는 가뭇없이 사라진다.

나인성을 향해 가시던 예수는 한 행렬과 마주쳤다. 어떤 젊은이의 장례 행렬이었다. 무슨 연고인지 몰라도 홀몸으로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신음하듯 울음을 삼키는 그 여인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예수는 그 행렬을 멈춰 세우시고는 관에 손을 대고 외쳤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러자 그 청년은 죽음의 베일을 벗고 산 자의 땅으로 돌아왔다. 믿음이란 일어서는 것이 아니던가. 일어선 사람, 독립의 사람은 다른 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사느라 자기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세상이 뭐라 하든 하늘 뜻에 따라 자기 삶을 조율하며 춤추듯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면, 원망하고 탓하는 버릇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가슴에 굳건한 기둥 하나가 들어서는 것이다. 기둥이 바로 서면 그 위에 어떤 무게가 얹혀도 견뎌낼 수 있지 않던가. 다소 막연한 이야기였지만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청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색한 침묵 끝에 말을 꺼냈다. “나는 언제나 일어선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앉으라고 말합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머리카락을 초록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들이거나 레게머리를 하거나 삭발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낯선 사람 대하듯 합니다. 내가 그러는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좋아 그러는데 사람들은 나를 시선으로 밀어냅니다. 그 소외감이 싫어서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 시작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견디면서라도 일어서야 할까요,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그 젊은이가 견뎌야 했던 시선의 폭력이 아프게 느껴졌다. 전체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회일수록 차이를 견디지 못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처럼 튀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동일성의 폭력이다. 생동하는 생명을 좁은 틀 속에 가두려는 이들이 있다. 그 틀에 들어가려면 이것저것 자르거나 구부려야 한다. 교회 생활이, 혹은 신앙이 생명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흑인민권운동을 벌이다 투옥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버밍햄 시립교도소에서 동료 목사들에게 보낸 편지로 피압제자들은 투쟁을 통해서만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오랫동안 나는 ‘기다려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 말은 흑인들이라면 누구나 귀가 닳도록 들어 온 말입니다. 대부분 ‘안 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저명한 법학자의 말처럼 ‘정의의 실현을 지나치게 지연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에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일어서야 할 때도 있다.

탈출 공동체는 애굽의 압제를 거부하며 일어섰고, 예언자들은 기존 체제의 죄악을 꾸짖으며 일어섰고, 예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성전 체제와 로마의 지배에 맞서 일어섰다. 부활의 삶이란 일어서는 것이 아니던가. 교회의 미래는 일어섬에 있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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