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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활은 기독교의 뿌리… 초대교회 원형의 복음으로 돌아가자

입력 2021-04-02 03:10:01




지금 한국 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코로나19 상황이 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말하고 있고, 여러 통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부활절을 맞아 부활 복음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를 다시 조명해 본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방인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들을 매장해 주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파라볼라노이’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초대교회는 탄압받는 집단으로 취급받아 공개적인 예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지하묘지인 카타콤으로 내려가서 예배드리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전염병과 권력자들의 조직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초대교회를 통해 로마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놀랍게도 역사상 가장 큰 부흥을 이루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부흥을 이룬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 이 시대에 부흥을 꿈꾼다면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은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으로 세워지기 때문이다.(엡 3:6)

그러면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은 무엇인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믿었는가. 첫째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다.(행 17:30~31)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심오한 깨달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했다. 따라서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증하는 것은 초대교회 신앙 회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기독교의 출발은 어떤 교리적 깨달음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실제 사건이다. 4복음서의 저자들이 꼭 기록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살아나셨고 그를 만났다는 ‘사실’이었다.(눅 24:36~48, 요 20:30~31)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 신학의 흐름은 점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부활이 실제로 역사 안에서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성을 상실한 의미’는 결국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부활의 의미가 우리에게 실제가 되고 강력한 충격이 되는 이유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활이 실제 ‘역사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이 실제이기 때문에 그 의미 또한 모두 실제인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성경 말씀이 실제이다. 이 명쾌한 사실이 초대교회의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둘째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우리가 복음을 말할 때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며 십자가는 부활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해 주셨다. ‘십자가’가 없는 구원은 없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드리신 영원한 제사를 받으셨음을 ‘부활’로 온 세상 가운데 선포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롬 4:25)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고전 15:3~4)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즉 기독론의 관점에서 ‘부활’을 선포했다. 부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밝혀지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속죄 사건이었다. 부활로 십자가의 참된 의미가 조명된 것이다. 이때 성령께서 강력한 회개의 역사를 일으키셨고, 이 ‘회개’가 바로 초대교회의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행 2:36~38)

셋째 참된 믿음은 지금 살아계신 부활의 주와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 것을 믿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믿음과 영접은 동일한 것이므로 참된 믿음은 영접,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는 것으로 확증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 자들의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인 ‘코람데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인 것과 같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도 실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한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게 한다. 부활은 십자가 사건의 참된 의미를 조명해 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그대로 믿게 한다.(행 1:11)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곧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이들은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그 날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에 집중하지 않았다. 이들의 초점은 다시 오실 예수님 자체였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고난과 핍박 앞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정결한 신부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는 재림 신앙으로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곧 다시 오실 주님 앞에서 터져 나오는 회개는 자발적이고 인격적이며, 삶이 변하고 주변에 영향을 미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재림,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며 이것이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이다. 부활은 기독교의 심장이며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 부활 복음으로 세워진 초대교회에 고난의 시대에도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코로나19로 어려운 이 시대에도 부활의 복음을 통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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