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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조선에 오게 한 ‘조미수호통상조약’ 140주년

입력 2022-03-24 03:05:05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한 미국과 영국, 중국 정상. 왼쪽부터 장제스 중국 총통,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 총통 부인 쑹메이링.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미수호조약의 주역인 미국 해군 로버트 윌슨 슈펠트 제독. 박명수 교수 제공




올해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지 140주년이 되는 해다. 조미조약은 조선이 최초로 서양제국과 맺은 조약이며, 이 조약을 계기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양국가들과 국교가 성립돼 조선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됐다. 이제 과거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살던 한국인들이 더욱 더 큰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했다.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살아왔으며, 대외관계란 중국과의 관계를 의미했다. 이런 질서에 변화가 온 것은 19세기부터다. 1860년 러시아가 연해주를 병합해 두만강 북쪽까지 접근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세력 일본이 등장했다. 일본은 1854년 개항과 1868년 메이지유신을 거쳐 근대국가로 발전했고, 1871년에는 중국과 수교해 중국과 대등한 국가가 됐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중국 러시아 일본의 한복판에 자리 잡게 됐다.

한반도 주변의 3국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 자기 국가 이익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한반도를 북경과 동북 3성을 지켜주는 왼팔이라고 봤고, 일본은 한반도를 대륙 세력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서 겨누는 단도라고 봤으며, 러시아는 한반도를 자신들이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교두보라고 봤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의 3국은 다 같이 한반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어떻게 해야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루고,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가. 당시 극동의 정세를 잘 알고 있던 미 해군의 슈펠트 제독은 조선은 운명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전쟁터이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미국과 손을 잡는 것뿐이라고 봤다. 또한, 슈펠트는 미국이 동북아의 중심에 있는 조선과 수교하는 것이 미국의 태평양 정책에 들어맞는다고 믿었다.

이렇게 해서 1882년 미국과 조선은 조미조약을 맺게 됐고, 제1조에 만일 조선이 주변의 국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미국은 이것을 조정해 준다는 소위 ‘거중 조정(good office)’ 항목을 넣었다. 고종은 이 거중 조정 항목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이 항목을 언급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고종은 갑신정변 청일전쟁 경술국치 때에도 미국에 거중 조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조선은 당시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유교는 붕괴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은 조미조약에 기독교 금지를 명문화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미국도 선교의 자유 항목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미조약에는 상업 여행 교육의 이름으로 외국인이 들어올 수 있는 항목이 있었고, 이 조항을 이용해 선교사들이 조선에 오게 됐다. 앨런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선교사들은 초기 한미관계의 중심인물들이었다. 개항기 조선에 거주하는 미국인 대부분은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서울 정동에 살면서 고종을 도왔다. 명성황후시해사건 직후에는 선교사들이 당번을 서면서 고종을 지켜주기도 했다. 이들은 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을 실시했고, 병원을 세워 과학적인 치료를 했다. 이들은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음을 전해 조선을 과거의 신분질서에서 해방했다.

선교사들은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렸다. 과거에 조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미국 사람들이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를 통해서 한국을 알게 됐다. 또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간 학생들도 미국 사회에 한국을 알렸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께 한국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미국이 1882년 조선에 약속한 거중 조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인들의 노력으로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43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와 함께 이집트 카이로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한국을 일본에서 해방해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그 약속대로 1945년 한국을 일본에서 해방했고 1948년 자유롭고, 독립된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1882년 조미조약에서 미국은 조선이 주변 강대국에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거중 조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이 약속을 오랫동안 잊어버렸다. 하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한국 기독교인들은 미국에 이 약속을 상기시켜 줬고, 미국은 그 약속을 지켜 우리를 일본에서 해방하고, 공산주의의 침략에서 보호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들어 줬다. 올해는 미국이 거중 조정을 약속한 14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국민들과 함께 이것을 기념해야 할 것이다.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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