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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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입력 2022-07-04 03:10:01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과 오병이어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이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기적을 경험했고 이를 본 제자들도 놀라워했습니다. 이튿날 동이 트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가버나움까지 찾아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보고 수많은 무리 중 제자가 되겠다고 자청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6장 후반부는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떠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시죠.

모여든 무리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꼬집으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지만 제자들 생각은 달랐던 듯싶습니다.

제자 중 여럿은 “이 말씀이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냐”고 말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고 어려워 예수님을 떠난 것일까요?

‘어렵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클레로스’입니다. ‘굳은’ ‘딱딱한’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말씀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완고한, 충격적인 말’로 해석됩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알았다는 것이죠. 그 말을 이해하고 알아야 충격이 되고 받아들일지 말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서’가 더 정확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속해서 표적과 기사를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영생만 이야기하시고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실망하고 실족해 떠나는 제자들을 보며 주님이 열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열두 제자들의 믿음을 향해 던진 질문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의 신앙 고백(요 6:68, 69)이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똑같은 때,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우리 삶에 펼쳐지는 신앙의 고백과 열매들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주님이시고,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주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 반대라면 세상의 유혹이 오고 육신이 피곤해지며 시험이 오면 맥없이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여기에 주님을 떠난 수많은 제자처럼 우리도 욕망과 욕심들로 인해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 위에서, 나의 필요가 하나도 채워지지 않는 상황들 가운데서 우리는 “영생이 주님께 있고 내가 주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데 어떻게 주님을 떠나겠습니까”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여러분의 삶을 채워 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삶 속에서, 흔들리고 넘어지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질문을 들어야 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성환 목사(유강침례교회)

◇이성환 목사는 2020년 10월부터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유강침례교회를 섬기고 있다. 회복과 쉼이 있는 예배공동체를 꿈꾸는 이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의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날마다 경험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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