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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 행하는 이에게 희망이 있다 선한 열정을 삶의 돛 삼아 영생의 길 찾아 떠나자

입력 2022-07-16 03:10:01
게티이미지뱅크












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리드 테니슨(1809~1892·아래 사진)은 아름다운 운율을 담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빅토리아시대(1837~1901)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가 쓴 영성의 시어들은 당시 싹트기 시작한 유물주의 사상,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등을 배격하며 영국 국민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나는 여행을 그만두고 살 수가 없다.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 버린다. 하지만 끝나기 전에/고귀하고 이름난 어떤 일을 아직 행할 수는 있을 것이니/내가 죽기 전에/저 황혼 너머, 서녘 별들이 멱 감는 그곳을 넘어가려는 것이/나의 목표다/한결같이 변함없는 영웅적 기개/세월과 운명 때문에 약해졌지만/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강하도다.”

테니슨이 1883년에 쓴 장시 ‘율리시스’의 서구 부분과 결구 부분에 나오는 명구이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시인은 율리시스를 이타카의 왕직을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위임하고 물질에 대한 안일함과 편안함을 떠나는 열정 높은 탐구자로 그린다.

시에도 사명이 있다. ‘율리시스’의 시대적 사명은 꿈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세상 질서에 순응해 저항하기를 포기한 이들의 열정을 깨우고, 내면에 솟아나는 선한 열정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영적 성장을 위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도전하며, 높은 지혜와 경험을 쌓으라고 독려한다. 멈춘다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 금속이 녹슬 듯 생명이 소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가려는 시인의 선한 열정이 잠든 영성을 흔들어 깨운다. 그는 활동과 추구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음을 계속 암시한다.

테니슨의 작품 전반에 배어있는 기독교적 감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살펴볼 만하다. 그의 아버지 조지 테니슨은 영국 링컨셔 서머스비 교구의 목사였고 어머니 엘리자베스 피체는 다른 교구 목사의 딸이었다. 그들은 열두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테니슨은 그중 넷째였다. 그는 천부적 재능을 토대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투철한 신앙교육과 고전문학 수업을 받았다. 테니슨은 열살이 되기 전에 시를 썼으며 그의 두 형 찰스와 프레더릭도 시인이었다.

1827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테니슨은 조용하고 은둔적 생활을 즐겼으나 점차 친구들을 사귀었다. 아서 핼럼을 비롯해 리처드 트렌치, 제임스 스페딩 등으로 구성된 ‘사도들의 모임(예수의 열두 제자)’에 참여했다. 토요일 밤마다 종교·문학·사회 등의 중요 문제들을 열띠게 토론했던 이들은 훗날 영국사에 주목받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됐다.

특히 테니슨과 아서 핼럼과의 우정은 각별했다. 핼럼은 테니슨의 누이동생인 에밀리와 약혼까지 했으나 1833년 뇌혈관 파열로 갑자기 사망했다. 친구의 죽음으로 테니슨은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별은 인류에게 흔히 있는 일”라고 위로했지만, 그는 “낟알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은 빈 왕겨일 뿐”이라며 애통해했다. 그는 오랜 시간 핼럼을 애도하는 시를 썼고 이 과정을 통해 슬픔을 치유했으며 결국 영적 구원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친구를 잃은 비운의 개인사가 시인으로서의 시적 역량과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확장해 주었다.

테니슨은 1850년에 핼럼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17년 동안 오랜 명상 끝에 완성한 133편의 애도 시를 담은 시집 ‘인 메모리엄’을 발표했다. ‘인 메모리엄’은 전체적인 줄거리는 없으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절망에서 소망을 되찾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까지의 영적인 순례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하나님의 강한 아들, 불멸의 사랑이여/ 우리는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 믿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당신을 포옹하여/ 증거 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을 가지나이다”로 시작되는 ‘인 메모리엄’은 종교적이며 철학적 색채가 짙다. 빅토리아 여왕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질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대중적 사랑에 힘입어 그는 계관시인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시는 많은 찬송가로 작곡됐다. ‘인 메모리엄’ 안에서도 특히 널리 애송되는 106번째의 시 ‘울려 퍼져라, 즐거운 종들아’는 찬송가 554장(통일 297) ‘종소리 크게 울려라’로 불리고 있다. 믿음과 소망을 되찾은 테니슨은 이 시에서 슬픔에 잠겼던 지난해에 이별을 고하고, 소망의 새해를 맞이하며 슬픔을 극복한다. “울려 퍼져라, 즐거운 종들아… 울려서 용감하고 자유로운 사람/한결 관대한 마음, 상냥한 손길을 맞이하여라/울려서 이 영토에서 어둠을 몰아내고/울려서 다시 태어날 그리스도를 맞이하여라.”(‘울려 퍼져라, 즐거운 종들아’ 중)

천상의 존재가 된 친구로부터 영원한 우정에 대한 확신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 그는 더 슬퍼할 이유도 없고 회의에 빠질 이유도 없다. 육체는 일시적이며 실재하는 것은 오직 영적인 것뿐이란 신념을 갖게 됐다. 시는 고독과 절망이 마침내 극복되는 것을 보여준다. 테니슨은 친구 죽음으로 깊은 슬픔과 회의에 빠지게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전보다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됐다.

해가 지면서 날이 어두워지듯 테니슨의 인생도 황혼으로 물든다. 그의 대표작 ‘모래톱을 건너며’는 77세에 쓴 작품이다. 그는 죽음의 세계인 저 먼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면서 간절히 기원한다.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한평생 그를 인도하신 그분을 만나 뵙게 되기를 소망한다. 유한과 무한을 상징하는 모래톱을 넘어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만나겠다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이 시는 테니슨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상징하고 있다. “지는 해 저녁별/나를 부르는 한 소리/나 바다로 나가는 날/모래톱에 슬픈 한숨은 없고/소리 없이 거품 없이 오직 충만한/잠자듯 움직이는 밀물만 있어라/가없는 깊음에서 나온 목숨이/다시금 제집 찾아 떠나가는 날 …모래톱 건너가면 길잡이 만나리.”(‘모래톱 건너며’ 중)

1892년 83세가 된 테니슨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으나 정신상태는 수정처럼 맑았다고 한다. 그해 10월 6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시인들의 묘역’에서는 시골의 달빛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장례식이 진행됐다. 테니슨은 아내의 작곡으로 연주되는 ‘모래톱 건너며’를 들으며 인생의 항해를 마감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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