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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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고싶은 설교] ‘때’를 알고 준비하는 삶

입력 2022-07-26 18:30:01






마태복음 25장1-13절은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처녀는 성도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말합니다.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때,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로 나뉘게 됩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의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신랑을 맞을 준비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똑같이 기다렸지만, 오직 신랑을 맞이한 것은 준비된 슬기로운 처녀들이었습니다. 이는 성도와 교회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신랑이 더디 온다고 비유 속 처녀들처럼 졸면 안 됩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더딜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육신적으로만 잠자지 말고 눈 뜨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 가운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25:5-6)

그렇다면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3절과 4절을 보면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8절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말합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그룹 모두 등은 준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등을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기름이 없으면 등을 켤 수 없습니다. 슬기로운 성도와 미련한 성도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했느냐? 준비하지 못했느냐? 예수님의 관심은 기름에 있습니다.

이 기름은 성령을 말합니다. 기름을 준비했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교회의 건물이 화려하다고 할지라도 더 중요한 것은 성도 안에, 교회 건물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함이야말로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더 불타오르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신부 된 성도와 교회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등불입니다. 똑같이 기다리고 똑같이 등을 들고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등불을 준비하는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이유는 신랑이 언제 올지 몰랐기에 나태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니 모두 졸다가 잠이 든 것입니다. 문제는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기름을 준비하기에는 늦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25:10)

문이 닫혔다는 것은 더 이상 혼인 잔치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나중에 기름을 새롭게 채워왔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오직 닫힌 문뿐이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아무리 외쳤지만 이미 늦은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가 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39절에 보면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홍수가 나서 멸망하는 때가 있습니다. 기회 될 때, 방주에 들어가야 하듯, 기회 될 때, 등불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 이하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그때의 그 모습으로 중단된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본분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늘 준비되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을 주님 안에서 뜻하신 바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둘째, 성령 충만을 힘쓰고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깨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말씀을 배우거나 습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묵상할 때 우리는 진정한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가 어렵다면 찬양하십시오, 우리가 찬양할 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의 언어가 바뀌고 우리의 자랑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영적인 준비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그날이 오면 더 이상 준비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습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그날이 가장 가까운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여 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십시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1-12)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우리를 자꾸 잠들게 만듭니다.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혹시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회개할 수 있을 때 회개하십시오, 은혜받을 수 있을 때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순종하십시오, 때를 놓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깨어 주신 사명 잘 감당함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새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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