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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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상속으로…] 나눔의 센터 된 교회… 먹을거리 이어 옷·생필품을 공유하다

입력 2022-08-17 03:10:02
충남 홍성군 결성감리교회(송경섭 목사) 입구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공유해 나누는 ‘공유 냉장고’ 결성점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성도들이 이웃을 위해 각종 채소 음료 간식을 채워놓은 공유 냉장고 모습.
 
송경섭 목사가 공유 옷장을 소개하는 모습.


높은 건물 대신 넓은 농지가 마을을 둘러싸는 곳, 사슴 목장과 정미소, 떡방앗간과 양조장 옆으로 스타벅스 대신 명다방 길다방이 쌍화차 내음을 풍기는 곳.

지난 8일 찾아간 충남 홍성군 결성면은 시간이 멈춘 듯한 전원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었다. 보건소와 마을회관 옆 소로(小路)를 지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다다르자 교회 앞마당에서 손을 흔드는 송경섭(60) 결성감리교회 목사가 보였다.

교회 입구엔 ‘홍성 공유 냉장고 결성점’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공유냉장고’는 지난해 이맘때 전 국민에게 홍성군을 따뜻한 동네로 각인시킨 키워드다. 당시 음식이 필요한 이웃에게 먹거리 나눔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공유 냉장고’가 지역에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는 7개의 냉장고가 ‘공유’란 이름으로 군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이어주고 있다. 교회 1층 입구에 놓인 냉장고가 4호 결성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성점은 그 시작부터 특별했다.

“우리 교회엔 성도들이 1만원씩 모아 매달 마을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기부봉사단이 있어요. 지난해 4월 한 노숙인이 비닐하우스 밭고랑에 라면 박스를 깔고 산다는 얘길 듣고 월세방 얻는 걸 도와줬지요. 근데 생활이란 게 어디 방 하나로 해결되겠어요. 냉장고라도 하나 마련해 들여놔야겠다 싶어 중고 냉장고를 사러 가는 길에 ‘공유 냉장고’ 얘길 들었어요. ‘그래 이거다’ 싶었습니다.”

인심 푸근한 성도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주일이면 고추 호박 상추 오이 등 손수 기른 수확물들을 가져와 냉장고를 채웠다. 손맛 좋은 성도들의 반찬 나눔도 이어졌다. 채워진 건 냉장고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의류, 생필품 등 이웃에게 나누고 싶은 물품들이 늘어나면서 냉장고 맞은편엔 ‘공유 선반’ ‘공유 옷장’이 생겼다. 기부봉사단에선 공유냉장고 전담 관리팀을 꾸렸다. 봉사단원 김화진(51) 집사는 “없어지면 채워지고, 또 없어지면 다시 채워지는 냉장고를 보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떠올랐다.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두 명의 태국 여성이 공유 냉장고에 다녀가면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이 교회 CCTV에 포착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송 목사는 “홍성엔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데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감동적인 소식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교회에 안 다니는 마을 주민은 물론 타 지역에서도 나눔 꾸러미가 교회로 밀려들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한 시민은 손편지와 함께 몇 번 입지 않은 옷과 작업할 때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에코백을 보내왔다. 기부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장성태(65) 권사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온기 가득한 곳이었나 싶을 정도”라며 “면사무소 복지팀과 도움 줄 이웃을 찾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공유 냉장고 외에도 교회엔 송 목사가 지난 2017년 부임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시작한 다양한 ‘섬김 실험’의 결과물들이 가득하다. 문화예술인, 공무원, 농협 조합장 등 지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지역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평화 기도회’, 군내 주요 소식과 주민들의 인터뷰, 교계 소식들을 담은 계간지 발간, 지역 내 유서 깊은 역사들을 집대성해 주민들에게 알리는 ‘결성역사연구소’ 활동 등 웬만한 관심과 노력으로는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이 군내 11개 면 중 가장 작은 결성면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송 목사와 줄곧 동역해 온 공승욱(61) 서산 새한교회 목사는 “결성감리교회가 걸어온 사역 여정을 보면 ‘사랑과 섬김’을 바탕으로 이웃과의 접촉점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정서가 스며들게 하는 지혜가 돋보인다”며 “선교적 관점에서도 귀감이 되는 공동체”라고 전했다.

결성감리교회는 예배 출석 성도 80여명 중 절반 이상이 70세 이상인 전형적 농촌교회다. 선교적 교회로서의 사역을 펼치는데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송 목사는 “이웃 섬김을 이행하기에 앞서 교회 공동체가 섬김의 본질에 대해 공감을 나누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목양 울타리가 견고하게 다져질 때 비로소 선행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송 목사는 부임 후 1년여간 매주 한 차례 성도들과 같이 ‘공동체 성경 공부’시간을 진행했다. 나눔 생태 환경 경제 등 주제는 다양했지만 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좋은 그리스도인은 좋은 시민이 돼야한다는 것’이었다.

송 목사는 “초반엔 ‘우리 목사님 운동권 출신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는데 시간이 흐르자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안팎으로 소통해나가는 모습이 보여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이웃들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말씀이 있는지 궁금했다. 기다렸다는 듯 답이 나왔다.

“요한복음 21장에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해 떡과 생선을 준비하는 장면이 있어요. 목회자로서 그 길을 따라가는 것 뿐이지요. 최근에 콩나물 재배기를 샀는데 얼른 길러서 얼마 전 만난 네팔 근로자들한테 콩나물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네요.(웃음)”

홍성=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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