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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심한 난청 유일 대안인데… 조건 까다롭고 성인은 ‘반쪽 혜택’

입력 2022-09-13 04:10:0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기 이식·외부장치 등 3000만원
수술 뒤 관리·재활 비용도 큰 부담
연령별 급여 대상 조건 달라 난감
외부 기기 교체 1회 지원도 문제

난청이 있으면 최대한 청각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청기가 있지만 이미 청각이 사라진 사람(전농인)에게는 소용이 없다. 이들에게는 인공와우(달팽이관)수술이 청력 제공의 유일한 대안이다. 귓속에 달팽이관을 대체해주는 기기를 심어 난청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준다. 인공와우가 소리를 뇌가 알아들을 수 있는 청각신호로 바꾸면서 난청 환자도 소리를 듣게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보청기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심한 난청의 근본적 치료 수단인 인공와우수술에 건강보험이 제한적으로 적용돼 상당수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승하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최근 대한이과학회 주최로 열린 귀의 날(9월 9일) 건강포럼에서 국내 인공와우수술 건보급여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조목조목 짚었다.

오 교수는 “국내 인공와우의 보급률이 높지 않은 이유는 크게 비용과 수술에 대한 인식을 꼽을 수 있다”며 “기기가 비싸고 수술 후 관리나 재활에 드는 비용도 매우 커서 한 차례 건보 적용으로 수술을 받는다 해도 지속적으로 재활이나 기기 유지를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따르게 돼 지레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또 “인공와우수술이 뇌 수술이라 위험하다거나 효과가 없다는 등 잘못된 인식으로 수술을 기피하기도 하고 반대로 인공와우를 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 수술을 무리하게 하는 경우 또는 결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사후 관리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채로 진행해 좋지 않은 사례로 비춰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인공와우수술에 가장 큰 걸림돌은 비싼 비용이다. 귀 속 기기 이식에 2000만원, 외부 착용 기기(어음처리 장치) 1000만원을 합쳐 대략 3000만원 정도가 든다.

반면 정부의 비용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급여의 문은 좁다. 2세 미만의 경우 양쪽에 90데시벨(㏈) 이상의 심도 난청이 있으면서 최소 3개월 이상 보청기 착용에도 청각 기능 발달에 진전이 없을 때 급여 대상이 된다. 2~19세는 양쪽에 70㏈ 이상의 고도 난청이면서 보청기 착용과 집중 교육에도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을 때 보험 적용을 받는다.

오 교수는 “소아들은 양쪽 난청이 비대칭형일때, 즉 한쪽은 보청기를 쓸 정도이고 한쪽은 보청기로 재활이 어려워 인공와우가 필요한 경우 건보 지원을 받으려면 양쪽 모두 고도 난청으로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며 “언어를 배워야 하는 영유아기의 비대칭형 난청에서는 나쁜 쪽에 하루빨리 인공와우를 하지 못하면 언어 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성인의 경우도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 현재 19세 이상은 양쪽이 고도 난청이면서 문장 언어 평가가 50% 아래인 경우만 급여 대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성인은 한 쪽 귀에만, 그것도 평생 한 번만 보험이 적용되는 ‘반쪽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에 한쪽 귀만 인공와우수술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공와우를 한쪽만 할 경우 각종 문제가 생긴다. 한쪽 청력만 들리고 나머지 한쪽은 못 듣는 ‘일측성 난청’ 상태와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청각은 양쪽이 들려야 제대로 작동하는데, 한쪽 귀만으로는 제 기능을 못한다. 한쪽 귀만 들리기 시작하면 일단 목소리가 커진다. 귀가 한쪽만 들리면 청력이 정상인 사람보다 4~5㏈ 정도 작게 들려 불편함이 따른다. 난청 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더 크게 이야기해달라고 말하기 때문에 결국 대화를 피하게 된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진다. 양쪽 귀가 다 들리면 듣고 싶은 소리를 선별하고 필요 없는 소리를 차단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한쪽 귀만 있으면 모든 소리가 다 들리면서 대화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람은 양쪽 귀를 사용해 방향을 예측하지만, 한쪽 귀만 들리면 어떤 소리가 어느 거리에서 오는지 구분이 어려워 사고 등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오 교수는 “적어도 25~30세 정도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첫발을 디뎌야 하는 연령까지는 추가 지원이 이뤄지고 양쪽 귀의 인공와우로 듣는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됐으면 한다”고 했다. 아울러 문장 인지검사 결과가 50% 이상이어도 인공와우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인공와우의 외부기기 교체를 한 번만 지원해 주는 것도 문제다. 인공와우는 수술로 이식해 주는 내부 기기와 수술 후 귀 뒤에 착용하는 외부기기로 구성된다. 내부 기기는 1회의 수술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평생 사용할 수 있지만 외부 기기는 휴대전화나 보청기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이 떨어지므로 일정 기간 간격으로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새 제품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 교수는 “기능 문제를 떠나 기존 제품이 단종돼 수리가 불가능하고 파손·분실했을 때도 이미 1회 지원을 받은 이후라면 큰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나 호주 싱가포르 등 인공와우가 보험되는 해외 국가들은 외부 기기도 3~7년 마다 혹은 5년에 한 번씩 교체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의사가 청력이 개선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원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인공와우 사용자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고충을 호소했고 비용 걱정으로 수술을 기피하는 청각장애인도 많았다”며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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