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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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낮은 곳에 불평등과 재앙이 겹쳐올 때

입력 2022-09-22 03:10:01


폭염과 폭우, 태풍으로 얼룩졌던 여름이 지났다. 여름은 지났지만 여름의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직 복구되지 못한 삶의 현장과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변하는 계절 앞에서 황망하기만 하다. 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계속되는 가을 태풍과 불가항력적인 사태들로 인한 걱정은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데 더해지는 한기 속에 마음조차 더욱 서늘하다.

노벨상 수상자 50여명을 대상으로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1가지의 다양한 원인이 나왔는데 그중 1위는 환경문제였다. 우리가 찬란하게 벌려 놓은 환경파괴가 가져올 수많은 변화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예상은 단순한 ‘썰’(說)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사건이 되었다. 해마다 이상기후를 갱신하며 들어본 적 없는 더위와 추위, 폭우와 폭설, 태풍과 우박 등을 맞이한다. 또한 설문은,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와 같은 감염 질환이나 늘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핵전쟁 등과 더불어 불평등도 순위에 올렸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도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이 불평등과 결합하면 위험은 배가된다.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예측된 11개의 요소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반지하와 폭우가 엉켜서 영화를 현실에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보면서 설문에 나온 개개의 요소들이 다양한 조합을 이룬다면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일이 벌어지면 다양한 정책이 말해지기는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이 그 정책의 실효성보다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이 파고드는 것은 불평등한 현실의 밑바닥이다.

불평등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분야로 확대되고, 급기야 송파나 수원의 세 모녀에게서 보는 것처럼 소리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도움을 청할 사람도 자신들이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보호막도 없이 찬바람이 부는 어느 곳에서 떨다가 불현듯 우리에게 ‘세 모녀’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세 모녀’와 ‘반지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되었다. 더불어 구룡마을은 외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이 풍족한 중에 넣은 부자의 헌금보다 크다고 칭찬하셨다. 과부의 헌금은 액수가 밝혀진 반면, 부자의 헌금 액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과부가 칭찬을 받았다면 결과는 분명하다. 부자가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해도 과부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는 과부보다 많이, 과부처럼 모든 것을 바치라는 끝 모를 권고로 이어진다.

이 또한 슬픈 일이다. 과부의 헌금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부는 자신을 도와줄 서기관들과 자신이 정당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사회에서 ‘손절’당한 상황이다. 과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있다.

전 재산이 두 렙돈인 과부가 그것을 바치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두 렙돈은 그녀의 삶을 마감하는 이정표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앞서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탐하며 잔치의 윗자리를 즐기는 서기관들의 긴 기도를 비판한다. 과부의 가산을 삼킨 이들이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할 때 찬바람에 내몰린 과부의 마지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과부의 마지막마저 탐욕의 제물로 바친다. 어떤 부자도 이길 수 없는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승산 없는 싸움에 매달리기보다는 과부를 더 이상 찬바람 속으로 내몰지 않는 것만이, 그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것만이, 아마도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전해준 의도일 것이다.

김호경 교수(서울장로회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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