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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독감시즌 ‘트윈데믹’ 우려… 면역 취약층 ‘백신접종이 답’

입력 2022-10-04 04:10:01
영국 리버풀시 외곽에 위치한 CSL 시퀴러스 백신 생산시설에서 연구원이 지난달 27일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면역증강제와 항원이 충전된 독감백신 시린지를 내보이며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백신 생산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남반구서 먼저 시작… 진화 거듭
인플루엔자 검출률, 2년 만에 160배
WHO, 65세 이상 75% 접종 권고
면역증강제 함유 백신 최대 강점
팬데믹때마다 생명 구원 이바지
차세대 자가증폭 백신 개발 박차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진정 국면에 있지만 인플루엔자(계절독감)와의 동시 유행 즉, ‘트윈데믹’에 대한 경고가 잇달아 나오면서 전 세계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찾은 글로벌 백신기업 ‘CSL 시퀴러스’의 영국 리버풀 독감백신 생산시설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곳서 접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계절독감 시즌의 트윈데믹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특히 독감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다음 팬데믹 인플루엔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남반구 유행, 북반구에 그대로?

시퀴러스의 인플루엔자 과학부, 세계보건기구(WHO) 및 국제제약협회(IFPMA) 책임자인 베벌리 테일러 박사는 “지난 2년간 인플루엔자가 거의 없었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바이러스 활동이 증가했다. 남반구에서는 계절독감이 평소 시즌(6~7월 시작) 보다 빠른 지난 4월부터 시작돼 5~6월 절정에 달했다. 인플루엔자 중 A형인 H3N2가 유행을 주도했다. 북반구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테일러 박사는 마침 지난달 26~30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국제인플루엔자호흡기바이러스학회(ISIRV)에 참석한 관계로 취재진이 찾은 당일 화상을 통해 학회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계절독감 시즌들이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인플루엔자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WHO 전 세계 감시·대응 네트워크(GISRS)에 따르면 2020년 인플루엔자 검출률은 0.015%였는데, 올해는 2.4%로 160배 증가했다.

시퀴러스의 글로벌 의학부 총괄인 조나단 앤드슨 박사는 올해 호주의 인플루엔자 시즌 혹독했던 상황을 역시 화상으로 전했다. 그는 “호주의 독감 확진자 수가 지난 5년 평균치를 넘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환자 대응에 따른 의료진 부족으로 호주의 의료 시스템에 큰 부하가 걸렸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긴급히 기존 고위험군뿐 아니라 접종에 적합한 일반인에게도 독감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앤드슨 박사는 호주 언론을 장식한 ‘트윈데믹, 이중고(Twindemic, Double Whammy)’라는 헤드라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또 “독감의 영향력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연령대, 특히 소아청소년에서 가장 컸다”면서 “독감 입원자의 60%가 16세 이하였으며 65세 이상은 18.5%만이 입원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말 기준 호주의 독감백신 접종률은 65세 이상이 80%에 달했으나 5~64세는 35%, 5세 미만은 34~35%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 절기 인플루엔자 유행이 예측되면서 WHO도 모든 국가에 고위험군(기저질환자 등) 및 65세 이상 인구에 독감백신 접종률을 최소 75% 달성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독감백신은 면역 취약층의 감염에 따른 합병증과 중증·사망 위험을 줄일 뿐 아니라 코로나19 재유행 시 의료 부담을 더는 데도 꼭 필요하다는 취지다.
 
연간 5600만도스, 20여개국 공급

CSL 시퀴러스는 1916년부터 100년 넘게 독감백신에 경험을 쌓아왔다. 1918년 스페인독감, 1957~8년 아시아독감, 1968~9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 등 그간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할 때마다 신속하게 백신을 개발·생산해 인류가 고비를 넘기는 데 기여했다. 영국과 호주에 유정란 배양 독감백신, 미국에 대규모 세포배양 독감백신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독감백신 생산 역량으론 세계 2위 규모다.

1943년 세워진 영국 리버풀 생산시설은 매년 5600만도스의 계절독감 백신을 만들며 인플루엔자 팬데믹 발생 시 2억도스를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다. 하루 57만5000개 이상, 연간 1억5000만개의 계란이 바이러스 배양에 쓰인다. 이곳은 백신 충전부터 품질 검사, 포장까지 완제품(fill&finish)을 만드는 곳이다. WHO가 각각 2월과 9월 북·남반구에 해당 절기 유행 인플루엔자 유형을 권고하면 곧바로 백신 생산에 들어가 대부분 7월까진 끝낸다. 나이절 힐튼 현장 생산 책임자는 “올 시즌 계절독감 백신은 이미 생산을 완료해 영국과 유럽 등 계약된 20여개국에 배송을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취재진 방문 당일에도 생산시설에선 작업 벨트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연구원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요구한 추가분 백신을 생산중이며 또 다른 라인에선 ‘프리 팬데믹(pre-pandemic)용’ 백신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퀴러스 독감백신의 강점은 면역증강제(adjuvant)가 함유된 백신과 세포배양 백신이다. 면역반응을 높이기 위해 백신에 첨가되는 면역증강제는 노화로 백신 효과가 떨어지는 65세 이상 고령층을 위한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퀴러스는 상어에서 추출한 천연 스쿠알렌 기반의 독창적인 면역증강제(MF59)를 개발했다.

세포배양 백신은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심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세포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해 분리하는 형태다. 유정란 배양 방식에 비해 실제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더 유사할 수 있다. 즉, 계란 기반 백신은 바이러스가 계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세포배양 백신은 그럴 확률이 낮다. 일부 연구를 통해 세포배양 백신 접종 그룹이 표준 용량의 유정란 백신 접종자 보다 독감이나 독감 유사 질병에 더 큰 면역효과를 보여줬다. 세포배양 백신은 팬데믹급 인플루엔자 유행 시 백신을 더 빠르게 대량 생산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도 2020년 세포배양 독감백신을 자체 상용화했으나 2년째 코로나19백신 생산시설로 전환한 상태여서 현재로선 시퀴러스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포배양 백신을 만들고 있다. 시퀴러스는 면역증강제가 포함된 유정란 기반 4가백신(플루아드 쿼드)과 세포배양 방식의 4가백신(플루셀박스)을 공급하고 있다. 면역증강제가 함유된 세포배양 4가백신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4가백신은 유행이 예고된 A형 2종, B형 2종의 인플루엔자 감염을 모두 막아준다. 미국 영국 호주 등 각국 보건당국은 65세 이상 대상으로 면역증강제 함유 4가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차세대 백신 개발 가속화

시퀴러스는 차세대 ‘자가 증폭 mRNA(sa-mRNA)’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활용된 기존 mRNA 보다 더 많은 항원을 생성해 항체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현재 이런 방식의 백신 후보물질을 다수 찾았으며 하반기에 계절독감 및 팬데믹용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미국과 다년간 계약을 통해 새로운 인플루엔자 항원 후보(A형 2종) 발굴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계절성 및 유행성 인플루엔자 모두에 장기간 보호를 제공하는 ‘범용 백신(Universal Vaccine)’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았다. 베벌리 테일러 박사는 “다음 팬데믹은 인플루엔자(A형)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팬데믹이 온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는 만큼, 전 세계가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버풀(영국)=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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