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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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하나님을 사랑하면 헌신하게 됩니다

입력 2022-12-20 03:10:0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라서 질투하십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 엄마는 닭 몇 마리를 드리면 너와 바꾸실까, 1000마리?” 아이들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흔듭니다. “그럼, 소 1만 마리면 어떨까?” 아이들은 잠깐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하고 웃습니다. 그럼요.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우리 자녀와 바꿀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과 우리를 바꾸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당신 아들을 내어 주신 겁니다. 그게 성탄이고 성육신이고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릴 대신해 죽임을 당한 사실, 그로 인해 우리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모든 인생의 소망입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죽고, 그 죽음 때문에 죄와 질병과 죽음의 저주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한나의 소원은 아들을 얻는 겁니다. 아들을 얻으려고 나선 기도의 자리에서 엘리 제사장을 만납니다. 엘리는 훗날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겨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에 손댔던 아들들을 단호하게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무겁게 여겨야 할 일을 가볍게 여긴 그의 죄는 결국 가문을 망하게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심판인지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회개도 용서도 때가 있습니다. 제사장과 백성의 죄악 때문에 나라에도 변고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고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처럼 불완전하고 한심한 지도자였지만, 그런 엘리 제사장 아래서 한나가 오랜 눈물의 기도로 얻은 아들 사무엘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토록 원했으면서 무섭도록 신속하게 하나님께 아들을 드립니다. 간절함 속에 얻은 첫아들을 도대체 어떻게 그리도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을 열일곱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쳤던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얻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십니다. 다 이유가 있지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창 17:2)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복 주시기 위해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최상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서 실패하기 때문에 헌신에서도 실패합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사랑해 사무엘을 온전하게 드렸습니다. 아브라함도 주저 없이 이삭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식을 드렸지만 실은 그들 자신을 기꺼이 드린 것입니다.

헌신은 우리를 단단하게 무장시킵니다. 헌신이란 말의 의미처럼 시·공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꽉 채웁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당신의 사랑과 헌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져 우리도 하나님 사랑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안석문 목사(아침교회)

◇안석문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중·고등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가르치고, 정릉교회와 예능교회 부목사를 거쳐 2006년 아침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막는 목회자 모임인 서울나쁜차별금지법반대기독교연합 상임총무, 기독교세계관전문잡지 ‘월드뷰’ 편집위원, 예배회복을위한자유시민연대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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