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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상속으로…] 독일 개신교 사회복지의 요람, 돌봄·자립·교육을 한 곳에서

입력 2022-12-21 03:10:01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루트비히스부르크 ‘칼스훼에재단’ 전경. 칼스훼에재단에서 거주하며 재활 치료를 받는 장애인들이 만든 공예품 모습. 루트비히스부르크자유교회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난민 쉼터를 최근 방문한 한 난민 모자.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장창일 기자, 칼스훼에재단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 슈투트가르트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루트비히스부르크는 제조업과 유통업이 발달한 경제 중심지다.

이곳에 독일 디아코니(Diakonie)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는 ‘칼스훼에(Karlshoehe)재단’이 있다. 종합복지시설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칼스훼에재단은 역사와 규모 면에서 독일에서도 손에 꼽히는 디아코니 시설 중 하나다.

개신교의 사회 봉사를 의미하는 디아코니는 그리스어 ‘디아코니아’의 독일어 표현으로, 독일 가톨릭의 ‘카리타스’와 함께 복지 강국 독일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1876년 고아원으로 시작한 칼스훼에재단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회복지 시설로 750여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146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 사랑 정신을 변함없이 실천하고 있는 칼스훼에재단을 최근 방문했다. 재단의 첫 인상은 흡사 숲 속의 수도원과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 수령의 크고 작은 나무가 곳곳에 있었고, 그 사이로 뻗은 도로와 산책로가 목가적 풍경을 빚어냈다.

축구장 18배에 달하는 13만㎡(3만9000평) 넓이의 부지에 40개 가까운 건물이 있는 칼스훼에재단은 아동·청소년 복지 시설을 비롯해 장애 재활훈련 센터·공방, 노인 돌봄 시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숙소, 중고품 가게, 재활 치료 승마장 등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아코니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4년 과정의 전문대학 ‘에팡겔리쉐 호크슐레’도 있다. 사회복지를 위한 전문가 양성과 장애인들의 생활·작업 공간을 비롯해 지역 사회 전역을 대상으로 한 복지 활동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칼스훼에재단 신학 분야 책임자인 도르테 베스터 박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칼스훼에재단은 단순 지원에 그치는 사회복지를 넘어서는 종합복지시설로 독일 디아코니의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베스터 박사는 “칼스훼에재단의 활동 범위를 특정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넓고 다양하다”면서 “교회를 기반으로 세워진 재단은 루트비히스부르크는 물론이고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전역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책임지는 디아코니의 요람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복지 전문가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한 공간에서 지낸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전문가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지만 중증 장애인들은 칼스훼에에 살며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자립을 위한 훈련도 받는다.

장애인 공방을 찾았을 때 적지 않은 수의 장애인들이 나무를 이용해 소품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품은 시민들에게 판매된다. 치료와 직업 훈련을 통해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유산을 지닌 독일 교회는 성경 말씀을 따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전통과도 같아 보였다. 독일 전역에 있는 디아코니 시설들이 이를 웅변하듯 보여준다.

독일개신교연합(EKD)에 속한 크고 작은 디아코니 기관은 독일 전역에 3만개를 웃돈다. 45만명이 넘는 직원들이 75만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매일 100만명 이상의 이웃과 난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 전체 장애인 시설의 50%와 병원 10%도 디아코니 기관이다. 사실상 국가의 사회복지 중 상당 부분을 교회가 감당하는 것이다.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 역사는 1833년 요한 힌리히 비헤른(1808~1881)이 성경의 이웃 사랑 정신을 담아 함부르크에 세운 복지 시설 ‘라우에 하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비헤른은 신앙 고백 차원에서 고아들을 돌봤다.

독일의 사회복지를 교회와 분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하엘 베르너 EKD 루트비히부르크노회 노회장은 “교회가 디아코니이며, 디아코니가 바로 교회인 게 독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건 교회의 가외 활동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바로 이웃을 위한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보여주는 가이드라인”이라면서 “독일 교회와 디아코니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성숙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독일 사회에서 교회가 여전히 신뢰를 유지하는 기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독일 디아코니의 최대 관심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난민 문제다. 율리아 스트뤠벨레 루드비히부르크 노회 디아코니 부서 담당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독일로 들어오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지역 교회와 협력해 난민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루트비히스부르크(독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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