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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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극존칭이던 ‘마노라’가 ‘마누라’로 변해

입력 2017-04-22 05:00:55


높은 곳에서 ‘위신’이 뚝 떨어진 인칭(人稱) 중에 ‘영감’이 있습니다. 영감은 조선시대 정3품과 종2품 관리를 높여 이르던 말이지요. 정2품 이상은 대감입니다. 영감은 나이 많은 남자를 홀하게 부를 때,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을 가리키거나 부를 때 쓰입니다.

위신 절하된 인칭에 ‘마누라’도 있습니다. ‘마노라’가 원말이지요. 광해군이 아우 영창대군을 죽이고 그 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시킬 때 정경을 궁녀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계축일기’에 나옵니다. “대비 마노라께 여쭈어….” “선왕 마노라부터 원망….” 대비나 왕 등 남녀불문 극존칭어였던 것입니다. 상전(上典)의 뜻이던 마노라가 마누라로 변해 지금처럼 쓰이는 것은 신분제 붕괴의 결과로 보입니다.

아내(마누라, 처)를 ‘우리 부인’이라고 하는 이들을 봅니다. 부인은 두 가지이지요. 결혼한 여자를 이르는 婦人,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夫人. ‘우리 부인’은 도대체 어떤 부인인가요. 夫는 남편입니다. 하늘(天) 위에 있는 남자라고 우기는 축도 있으나 상투 튼 사람 즉 장가 든 사람 모습을 본뜬 글자이지요. 婦는 비를 든 여성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남자는 청소를 통 안 했다는 얘기 같습니다. 하늘이 정해준,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나요.

위에서 보듯 마누라가 영감보다 급이 한참 높았는데, 또 그런 경향이 굳어져가는 듯합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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