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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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언노운 걸’ ‘나는 부정한다’] 거짓을 이기는 방법에 대하여

입력 2017-05-08 05:05:04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감춰졌던 정권의 비리와 무능이 드러나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지난 가을부터 선거전이 치열했던 올봄에 이르기까지 현실은 지루할 틈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극장보다는 광장이, 영화보다는 뉴스가 더 흥미진진했던 시간들이 지났다.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진실’과 ‘정의’를 주제로 시민들이 써내려 간 역사의 챕터 하나가 마무리될 것이다. 좀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게 된 이 즈음, 두 편의 영화가 눈길을 끈다. ‘나는 부정한다’와 ‘언노운 걸’이다.

벨기에 대표 감독인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은 어느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찾기를 다룬다. 소도시의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의사 제니는 진료시간이 끝난 어느 저녁 누군가 문밖에서 울린 벨소리를 무시하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근처 공사장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 벨소리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시도한 구조 요청이었음이 CCTV에 남겨진 이미지를 통해 밝혀진다.

‘로제타’부터 ‘내일을 위한 시간’에 이르기까지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었다. 제니도 마찬가지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이민자로 보이는 흑인 소녀의 다급한 눈길과 마주친 그녀는 죄책감에 빠진다. 사인조차 불분명한 익명의 죽음을 경찰은 소홀히 처리한다. 주변 사람들도 무관심할 뿐이다. 하나의 존재가 자신의 이름도 가족도 찾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매장되고 잊혀서는 안 된다고 믿기에 제니는 홀로 끈질긴 탐문의 여정을 시작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온 다르덴 형제는 이번에도 냉철한 사실주의를 통해 현대사회에 비판적 메시지를 던진다. 피해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것. 이것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양심적 행동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국 믹 잭슨 감독의 작품 ‘나는 부정한다’는 진실을 밝히려는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다.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비드 어빙이 1996년 유태계 미국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와 펭귄북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시작된 실제 재판 과정을 영화화했다.

홀로코스트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를 보아왔다. ‘밤과 안개’에서 ‘쇼아’까지, ‘쉰들러 리스트’부터 ‘인생은 아름다워’ ‘사울의 아들’까지.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재현하거나 피해생존자의 증언을 다루지는 않는다. 나치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실제로는 일어난 적이 없다거나 날조된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 비극에 적절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논리와 싸우는 과정을 탄탄한 긴장감 속에 그려낸 점이 탁월하다.

데보라의 법정 변호인은 어빙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그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진실을 왜곡하려 작정한 자들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철저히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득하려는 모든 시도는 오히려 그들에게 좋은 먹이가 될 뿐이다.

“이제 그만 좀 해. 언제까지 슬퍼할래?”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조사하며 분노하는 변호사에게 동거인이 불만을 터뜨린다. 끈질긴 탐문을 이어가는 ‘언노운 걸’의 제니에게도 사람들은 지겨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양심과 소신을 품은 이들은 꿋꿋이 나아간다. 희생자의 눈을 응시하며, 가해자의 눈과 입은 무시하며. 두 편의 멋진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진실이 이기길 바란다. 그럴 것이라 믿는다.

여금미 영화 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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