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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보료 안 내려고 도둑처방 받는 영주권자 체포

입력 2017-06-06 18:25:01


50억원대 재산을 보유하고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아내와 장모 명의로 의약품을 처방받아 온 뉴질랜드 영주권자가 10년여 만에 덜미를 잡혔다. 약을 처방해주고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허위로 약값을 청구한 의사 2명도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명의를 도용해 의약품을 처방받은 이모(61)씨를 사기, 주민등록법 위반,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처인 배모(42)씨 명의를 도용해 100여 차례 정신과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이혼했다. 이씨는 배씨의 건강보험을 이용해 병원에서 처방받으면서 아내였던 배씨를 “먼저 나가 있으라”고 유도했다. 이 때문에 배씨는 이혼 후에도 전남편 이씨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처방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전처의 모친 윤모(75)씨 명의까지 도용했다.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서울 성북구 A내과 원장인 오모(49)씨에게 배씨와 윤씨 명의로 위궤양 약과 수면유도제 등을 모두 70여 차례 처방받았다. 또한 서울 양천구 B신경정신과 원장인 김모(62)씨에게도 30차례 신경정신과 약품을 처방받으면서 장모 윤씨의 명의를 도용했다.

그의 범행은 전처인 배씨가 지난 1월 인천 연수구 한 신경정신과에서 수면유도제를 처방받는 과정에서 꼬리를 밟혔다. 당시 담당의사는 배씨가 이미 다른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았다면서 약을 주지 않았다. 배씨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내역을 확인하고 이씨가 10여년간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인천과 양천구 목동 일대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을 소유한 50억원대 자산가였다. 1994년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한 그는 국내에 주로 거주하면서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경우 부동산이 많은 자신에게 높은 보험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씨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허위로 건보공단에 약값을 청구한 내과 의사 오씨와 신경정신과 의사 김씨도 불구속 입건하고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오씨와 김씨 모두 대리처방인 줄 착각했다고 주장했지만, 두 의사 모두 대리처방이라는 표시도 하지 않고 건보공단에 금액을 청구해 부당이득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대리처방 시에는 건보공단에서 진찰료의 절반만 받을 수 있다. 오씨와 김씨는 각각 82만4000원, 94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건보공단은 개별 병원이 허위 청구한 진료비는 모두 환수할 계획이다.

의사들이 대리처방을 주장하고 있지만 명의 도용 처방이 이뤄지는 등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호영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4월 직접 진찰받은 환자가 아니면 누구든지 의사 처방전을 수령할 수 없도록 원칙을 정하되, 예외적으로 환자에게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가족이 환자를 대리해 처방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글=허경구 이상헌 기자 nine@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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