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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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너에게 묻노니… 죽은 거야? 변한 거야?

입력 2017-07-05 05:05:03
기형도 심보선 이성복 함민복 최승자 황동규 등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한데 모아봤다.






문학과지성사(문지) 시인선이 10일 국내 시인선 최초로 500호를 돌파한다. 문지는 1977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낸 이래 지금까지 매월 평균 1권 이상의 시집을 냈다. 이런 얘길 들으면 “요즘 누가 시를 읽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시집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2000년대 이후엔 베스트셀러 시집을 보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80∼90년대는 ‘서정시를 읽는 시대’였다. 87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2위는 각각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었다. 홀로서기는 초판이 나온 뒤 석 달 만에 13만부가 팔려나갔다. 당시 한 매체는 이런 현상을 두고 ‘무명시인 작품 폭발적 인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이듬해에도 두 시집은 각각 1·3위를 차지했다.

80년대 후반 거센 민주화와 자유화 바람 속에 개인의 서정을 담은 시가 큰 인기를 얻었다. 90년대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 원태연의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같은 따뜻하고 달달한 시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이후엔 여러 가지 시를 묶은 편집시집말고는 베스트셀러 시집을 찾기 어려웠다. 2000년대 중반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대표적 편집시집이다. 서정시를 쓰고 읽는 사람이 줄어든 것일까.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공동대표는 4일 “80∼90년대는 많은 사람이 다 같은 시집을 읽었기 때문에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면 2000년대부턴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읽으면서 다양한 시집이 꾸준하게 팔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양한 시집은 연간 출간된 시집 종수로도 확인된다(표). 95년 641권에 불과하던 신간 시집은 계속 늘어나 2015년 2329권까지 나왔다. 스테디셀러 중엔 시집이 많다. 89년 출간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매년 1만권 이상 나간다. 황동규 유하 황지우 이성복 허수경 나희덕 등의 시집도 대표적 스테디셀러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시인선은 꾸준히 나가기 때문에 수익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고 귀띔했다.

젊은 시인들도 대거 등장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2000년 이후 소위 미래파라 불리는 시인들이 나오면서 실험적인 시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런 시를 좋아하는 마니아 독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김소연 김경주 심보선 오은 박준 황인찬 등과 같은 젊은 시인 시집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권희철 문학동네 편집위원은 “80∼90년대와 달리 지금은 시와 경쟁하는 미디어가 너무 많다”면서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시가 상당히 많이 읽히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10년대 이후 하상욱의 ‘서울시’와 같은 SNS시와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마라’같은 댓글시 등 새로운 장르도 개척되고 있다.

단문인 시는 SNS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유희경 시인은 “시에 뚜렷한 개성이 담기는 점과 시어가 가진 모호성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독서인구는 고령화되는 추세지만 시집 구매 연령대는 10년 전(53%)이나 지금(52%)이나 20∼3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정시는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시는 살아있다.

글·사진=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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