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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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 FTA 재협상 공식화됐는데 통상 사령탑이 없다

입력 2017-07-13 18:20:01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특별 공동위원회를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자고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너무 빠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지 12일 만이다. 사실상 한·미 FTA 재협상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일부를 수정하는 개정 협상이든 재협상이든 불가피하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되 받을 것은 확실히 챙기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성명에서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수지 적자는 132억 달러에서 276억 달러로 배가 됐고, 미국의 상품 수출은 실제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상품수지 적자를 문제 삼고 있지만 서비스·투자 부문에선 흑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협상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여행수지·지적재산권·운송수지 등 서비스수지 부문에서 미국에 142억8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도 한·미 FTA 발효 전인 2011년 73억 달러에서 지난해 129억 달러로 늘었다. 반면 미국의 한국 투자는 같은 기간 23억 달러에서 38억 달러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공정 무역의 사례로 자동차와 철강을 콕 찍어 지적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을 더 개방하면 미국차가 잘 팔릴 것으로 알았는데 실제는 유럽차가 이득을 보고 있으니 불만이 나올 법하다. 국내에 투자한 외국 기업 브랜드를 빼면 지난해 실제 수입된 22만대 중 17만대가 유럽차이고 1만8000대가 미국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도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통해 우리쪽 관세를 지난 4년 동안 8%에서 4%로 내리고, 미국은 2.5% 관세를 4년간 유예했지만 오히려 미국 시장의 한국차 수출이 늘었다. 철강과 IT 제품의 대미 수출이 늘어난 것도 FTA 효과보다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불공정한 운동장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제품의 경쟁력 문제라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한·미 FTA 재협상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는데 불을 끌 통상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표류하면서 미국과 협상을 이끌어갈 우리 측 공동위원회 의장인 통상교섭본부장은 임명되지도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통상에는 문외한이다. 한·미 FTA 재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공약했던 내용이다. 통상협상팀을 꾸리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했어도 부족할 판인데 너무 안이했다. 자국 이기주의가 강화되면서 통상은 화급한 문제다. 미 USTR에 버금가는 통상 조직을 만들고 위상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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