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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남중] 원전보다 휴가

입력 2017-07-20 17:50:01


원자력발전소를 닫느냐 마느냐 논란이 뜨겁다. 탈원전, 탈핵이 책이나 성명서가 아니라 신문의 주요 뉴스로 오르내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문재인정부가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탈원전 정책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탈핵은 한국에서도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도 한국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속속 탈원전에 착수했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정부는 노후 원전의 재가동을 결정했고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증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원전은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원전을 고집했지만 서울시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후쿠시마 참사를 목격한 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환경운동가, 에너지 전문가, 시민들을 모아 토론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4월 토론을 통해 찾아낸 미니태양광 보급, LED 조명 교체, 빌딩 에너지 효율화 등 100여 가지 사업을 ‘원전하나줄이기’라는 이름으로 본격화했다. 국내 최초의 탈원전 실험이었다.

지난 5년간의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으로 서울시는 원전 2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거나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늘려나감으로써 대도시도 에너지 생산 도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서울시의 전력 자립률은 2011년 2.9%에 불과했으나 2015년 말 5.5%로 증가했고 2020년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탈핵 선언은 이제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 원전 줄이기를 시작해보자고 제안한 수준이다. 탈핵이라는 방향 전환은 의미가 크지만 독일이나 대만처럼 ‘100% 탈핵’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탈핵 선언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라면 어디서나 하는 일이다. 한국이 늦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걸 마치 혁명공약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다.

탈핵이 이슈가 되면서 원전 옹호론도 거세지고 있다. 원전이 안전하고 싼 에너지라며 원전으로 만든 값싼 전기를 맘껏 쓰면서 ‘전력복지’를 누리라는 식의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원전이나 화력발전이 싼 이유는 가늠조차 안 되는 규모의 환경비용이나 퇴출비용 등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싼 전기의 혜택이란 것도 사실 대기업이 가장 크게 받는다. 원전이나 화력발전에 특혜를 주고 싼 전기를 만들어 대기업들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걸 전력복지라고 얘기하는 건 눈속임이다.

여름철 오후 1∼3시에 최고조에 오르는 전력 사용량을 분산시키기만 해도 원전 가동을 멈출 수 있다. 홍덕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에 따르면 여름휴가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8월 첫주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기간이면 최대 전력수요가 10% 이상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휴가를 떠나 전력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홍 위원은 대규모 발전설비를 늘리는 대신 휴가를 늘리는 것을 제안한다. 전력 피크를 관리할 생각은 안 하고 전력 수요를 최대한 높여 잡으면서 원전 증설의 명분으로 삼아온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 막 탈핵의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우리가 어떤 수준의 탈핵을 이룰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전을 모두 멈추고 여름을 나긴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가 원전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전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후쿠시마 사고가 있던 해 7월, 일본은 ‘원전 없이 여름나기’에 돌입했다. 전력 수요량이 가장 높은 여름에 원전을 끄고 살아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50여기의 보유 원전 중 40여기를 동시에 스톱시켰을 정도로 과감했다. 대신 전력 피크를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공무원들은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근무했고 기업들은 반일근무, 주3일 휴무제, 야간근로제 등 실험적인 근무체제들을 도입했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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