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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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못누리는 돌밭 같은 사람마음 옥토로 바꿔 줄 것”

입력 2017-08-01 00:05:01
박은정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가 지난달 20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기독교심리상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놀이치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박은정 교수. 박은정 교수 제공


17세 사춘기 소녀는 주일만 되면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돕느라 진이 빠졌다. 교회엔 유독 자폐증과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를 앓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두 그가 돌봐야 할 대상이었다. 힘들게 봉사하며 자신이 성경에 등장하는 여인 중 ‘일이 많아 분주한’ 마르다(눅 10:38∼42)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40대 중반이 된 그는 “과거의 고난은 봉사의 삶을 통해 은혜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고백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박은정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기독교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다.

박 교수는 2013년 웨신대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기독교상담심리학과엔 석사과정 학생 6명만 있었으나 박 교수가 온 뒤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학생은 60여명으로 늘었다. 졸업생 상당수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 교육청과 학교, 교회와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교수는 단순히 상담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직접 상담하며 섬겼다. 평생 선교지에서 헌신하다 심신이 지쳐 국내로 돌아온 한 선교사는 박 교수의 도움으로 다른 은퇴선교사들을 돕는 상담사로 거듭났다. 한 중년 여성은 박 교수의 돌봄과 가르침에 힘입어 50대에 상담 공무원으로 뽑혔다며 장문의 감사 문자를 보내왔다.

현재 자리에 이르기까지 박 교수는 연단의 시기를 통과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상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한 뒤 상담 관련 강의를 모두 수강했다. 96년엔 1년을 휴학하고 영국에 갔다. 새로운 환경에서 소명을 찾고 싶었다. 1월부터 7개월간 국제선교단체인 ‘WEC국제선교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지냈다. 청소와 식사준비를 하며 세계 곳곳에서 온 선교사들을 만났고 그들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같은 해 8월부터 12월까진 기독교 철학자인 프란시스 쉐퍼가 설립한 라브리공동체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쉐퍼의 딸 수잔 쉐퍼 맥콜리를 만났다. 박 교수는 수잔과 교제하면서 신앙의 토대를 다시 세웠고 성경을 새롭게 읽는 방법을 배웠다.

“수잔은 성경을 눈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가 알려준 대로 오디오북으로 성경을 듣고 성경동화를 읽었어요. 또 말씀을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온몸으로 성경 말씀을 경험했어요.”

출산과 박사학위 공부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1년 석사과정을 마친 뒤 기독교 잡지 ‘빛과 소금’의 기자가 됐다. 2002년엔 교회 청년부 형제와 결혼했고 곧 임신했다. 행복한 미래만 보였다. 하지만 예상 못한 시련이 닥쳤다. 2003년 2월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고된 일 때문이었는지 양수가 보통 산모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결국 기자를 그만뒀다. 박 교수는 “당시 남편과 눈물로 기도하며 기형아를 주셔도 낳아서 잘 기르겠다고 서원했다”고 말했다.

그의 서원은 섬김의 자리로 이끄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2003년 가을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다른 이들을 더 열심히 섬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어 석사논문 지도교수를 통해 이대에 목회상담 박사과정이 처음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곧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가 2015년 ‘놀이치료를 통한 목회상담’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웨신대 교수로 부임하기 직전인 2010년엔 고 하용조 목사의 요청으로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에서 상담실 팀장으로 섬겼다. 2년간 상담사를 훈련시키고 상담실을 혁신했다. 박 교수는 “사전 연습을 통해 상담전문가로 보내려는 하나님 뜻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 교수의 상담철학과 비전은 분명하다. 그는 “돌밭과 가시덤불 같은 상태로 살면서 은혜를 못 누리는 사람의 마음을 옥토로 바꾸는 게 기독교심리상담”이라며 “은퇴까지 20년 남았는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배하은·임희진 대학생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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