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HOME  >  인터뷰  >  미션

[우먼 칸타타] “주님 인도하심 따라, 복음 불모지 누볐지요”

입력 2017-12-05 14:10:02
최현미 한국오엠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오엠 본부에서 지난 20여 년간의 선교사역을 회고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매순간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그 인도하심대로 삶의 방향을 정했다. 척박한 복음의 불모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세운 삶의 기준이었다. 한국오엠 최현미(52) 대표는 지난 26년간 루마니아와 영국 무슬림지역, 중동지역 선교사로 사역했다. 최근 그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오엠 본부에서 만났다.

최 대표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증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한 번만이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 소망은 각자가 속한 사회와 나라에서 땅끝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최 대표는 한국오엠(Operation MobiliZation) 역사상 첫 여성 대표로 지난해 취임해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으로 선교단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소명 그리고 서원

그는 대학 입학 후 한국기독학생회(IVF) 학내 선교기도 모임을 인도하며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의 기도편지를 받고 선교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했지만 직접 선교사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선교포스터에 적힌 ‘누가 당신의 삶의 고삐를 쥐고 있습니까?’란 문구가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그동안 삶의 주인은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는데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1990년 청년대학생 선교집회인 ‘선교한국’에 참석했다. 패트릭 존스턴 선교사가 한 여성의 사진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말했다. “이 여인에게 갈 단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전신을 검은색 부르카로 가린 무슬림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가슴 부분에 동그란 눈동자 두 개가 반짝거렸다. 여인이 안은 아기의 눈동자였다.

“그때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을 들었어요. ‘그들을 안아 줄 수 있겠니?’ 저는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순간 삶의 고삐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고백했다. “주님. 제가 저 여인에게 갈 수 있는 그 한 사람이라면 가겠습니다.”

영적 전쟁의 최전방으로

최 대표는 ‘삶의 십일조’를 생각했다. ‘남자들이 2년간 군대에 가는 것처럼 나는 2년 동안 ‘그 무슬림 여인’에게 가 있겠다.’ 그러나 그가 처음 단기선교를 간 곳은 공산권 장벽이 막 무너진 루마니아였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저와 달랐어요. 저는 중동지역으로 가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훈련의 시간을 주셨어요. 루마니아 청년들과 함께 찬양하고 전도하면서 내성적이던 제 성격이 적극적이고 유쾌한 성품으로 변했어요. 하나님은 제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어요. 먹을 것이 없어 굶기도 했고, 난방이 안 돼 추위에 떨기도 했지만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어요.”

그는 루마니아선교 개척팀의 일원으로 선교활동을 감당했다. 이어 영국에서 활동하며 유럽에 퍼져있는 다양한 무슬림들을 만났다. 2002년부터 7년간은 중동 Y국 선교사로도 활동했다. NGO에 소속돼 지역개발 사역을 담당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베드윈족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남성의 60%, 여성의 80%가 문맹이었다. 주요 수입원은 농업과 어업이지만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역 개발을 위한 교육센터에서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기술 교육을 했다. ‘여성클럽’을 만들어 1주 한번 집으로 초대해 영어공부와 토론을 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 온 크리스천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들의 기도내용을 듣고 깊은 감동 받았어요. 가사도우미, 건물 청소부 등으로 힘든 일을 하는 이들이 자신을 고용한 집주인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더군요.”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창궐로 7년간의 사역을 접어야 했다. 정부의 요청으로 모든 외국인들은 철수해야 했다. 2009년 그곳을 떠났다. 문이 열리면 다시 가고 싶다.

20여년의 선교사역 중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없었다. 다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힘겨울 때가 있었다. 선교지에서 독신으로 30세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마음이 무거웠다. “한번은 시장거리에서 한 무슬림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지나갔어요. 모멸감을 느끼고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채찍에 맞고 침을 맞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셨고 마음을 회복시켜 주셨어요.”

그는 이제 더 이상 선교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파키스탄이나 예멘은 선교의 문이 닫혀 아예 갈 수 없어요. 그런데 이들이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등으로 우리 곁에 있어요. 이 땅에서 한국교회가 함께 품고 나가길 바랍니다.”

그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만이 아니라, 복음을 접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이 땅에서 한국교회가 함께 품고 나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한국오엠은 국제오엠의 지부로 1989년 창립됐다. 현재 150여 명의 장기, 단기 사역자들이 세계 60여 개의 사역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