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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야구 선수들, 목숨 건 탈출 이제 끝!

입력 2018-12-20 19:10:01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 출범 이전부터 미국 메이저리그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야구광이었던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후 미국의 금수 조치로 쿠바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한동안 끊겼다. 쿠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1990년대 초반 망명 선수들이 나오면서부터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거나 대회 기간 중 숙소를 나와 망명을 하고서야 메이저리거로 뛸 수 있었다.

그런 쿠바 선수들이 더 이상 탈출이나 망명 없이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두 나라 야구 관계자들이 쿠바 선수의 합법적인 메이저리그 진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미국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 쿠바야구협회가 20일(한국시간) 쿠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뛸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쿠바 선수 영입 과정에 한국과 일본, 대만과 마찬가지로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도입키로 했다. 협약에 따르면 쿠바야구협회는 나이 25살 이상에 6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하면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한다. 25세 미만 선수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원할 경우에는 쿠바야구협회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지난 몇 년간 메이저리그는 쿠바 선수들이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계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며 “쿠바 출신 메이저리그 선배들이 겪은 과정 없이 젊은 선수들이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만프레드 커미셔너의 말대로 쿠바 선수들은 그간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위해 보트를 타거나 범죄 조직과 손을 잡는 등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례로 류현진의 팀 동료이자 LA 다저스 간판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는 탁월한 운동신경과 팬들을 즐겁게 하는 쇼맨십으로 유명하지만 메이저리거가 되기까지 적잖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지난 2012년 보트를 타고 고국 쿠바를 탈출한 푸이그는 멕시코를 경유한 뒤에야 미국으로 입국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마약 조직에 연루돼 살해 위협도 받았다. 실제 지난 2014년 한 밀입국 브로커가 푸이그를 미국으로 밀입국시켜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는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밀입국 조직이 푸이그에게 밀입국 대가로 25만 달러를 요구했다가 40만 달러로 올렸고, 이를 거부하면 살해한다고 위협한 것이다.

푸이그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보트 사고로 사망한 호세 페르난데스는 가족과 함께 쿠바를 탈출하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보트에서 뛰어내리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레오니스 마틴은 탈출 과정에서 가족들이 인질로 잡혔고 연봉과 보너스 중 일부를 내놓는 노예 계약을 강요당했다고 알려졌다.

협약 소식을 들은 쿠바 출신 메이저리거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푸이그는 “정말 행복한 날이다”며 “미래의 쿠바 선수들이 우리가 거쳤던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무척 행복하다”고 가슴 벅차했다. 2013년 쿠바에서 탈출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대형 타자 호세 아브레유도 “가슴 속의 이 기쁨과 흥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감격해 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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