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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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트루디 (5) 사랑에 빠진 트루디, 빌리의 어린 시절 궁금해져…

입력 2021-09-30 03:10:02
6·25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하던 시절 김장환(오른쪽) 목사와 칼 파워스 상사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빌리(김장환 목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주말마다 선배들과 시골로 전도집회를 다녔다. 나 역시 빌리가 강단에 선 모습을 몇 번 봤는데 학생들에게 그의 강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떤 날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 남부에 있는 아칸소 주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유명세가 퍼지자 빌리는 대학교 3학년 때쯤엔 이 도시 저 도시로 불려 다니는 유명 강사가 돼 있었다. 빌리가 바빠지면서 주말에 나와 함께 지낼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서운하기 보다 마치 내가 빌리의 일을 하는 것인 양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빌리는 한국에서 어떻게 자랐어요?”

한 번은 빌리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 있었다. 빌리는 한국전쟁 때 우연히 어떤 미군의 눈에 띄어 하우스보이가 된 사연과 어머니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빌리는 당시 칼 파워스라는 미군 상사를 통해 미국 유학을 오게 됐다. 칼 파워스는 당시 크리스천이 아니었는데 한국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자신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당시 환갑이었던 빌리의 엄마는 10년이라는 유학 기간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한다는 말에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단호한 모습에 결단을 내린 그는 아들이 미국으로 가기 전날 옷에 부적도 달아주고 흙 한 봉지도 싸줬다. 아들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한국의 풍습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중에 “만약 빌리가 미국에 오지 못했다면 이렇게 유명한 전도자가 될 수 없었겠죠”라고 물었다. 빌리는 옅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답했다. “물론 트루디도 만날 수 없었을 테고.”

어린 소년이었던 빌리는 겁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미군을 따라갔지만 나는 그 이면에는 그를 미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가 계획돼 있었다고 믿는다. 전쟁통에도 방과 후에는 나무를 하러 뒷산에 가야 했던 어린 소년, 그의 앞날을 내다본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미국으로 보내셨던 것은 아닐까.

나는 미국에 있을 때 빌리의 한국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불렀다. ‘김장환’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발음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장’과 ‘환’이란 글자가 모두 입을 오므렸다 펴야 하는데 ‘billy’는 그냥 휘파람 불듯 부르기 쉬웠다. 빌리는 가끔 그런 내게 “김장환, 김, 장, 환 이렇게 발음해 봐”하며 내 발음을 두고 놀렸다.

하지만 빌리도 영어를 썩 잘했던 건 아니다. 각종 웅변대회에서 상을 타긴 했지만 빌리는 영어 발음이 약간 이상한 데다 문법이 틀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점이 오히려 더 귀엽게 느껴졌다. 발음이 이상한 게 빌리의 매력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내게 “빌리한테 푹 빠지긴 빠졌다”며 나를 놀렸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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