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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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트루디 (10) 날 껴안은 시어머니 “예쁘게도 생겼네, 꼭 한국 사람처럼”

입력 2021-10-07 03:05:02
트루디 사모가 1959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든 크리크 화물선을 타고 한국 인천항으로 오는 배 안에서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채 사진을 찍었다.


1959년 11월 우리 부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든 크리크라는 화물선을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어릴 때 호숫가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놀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배를 탄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배를 타고 오는 17일 동안 남편과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갑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크루즈 신혼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지냈다. 대화 소재는 주로 한국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못쓸 텐데, 내가 한국말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알고 보면 한국말 그렇게 어렵지 않아.”

빌리는 내가 한글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 걱정됐는지 틈만 나면 한글을 가르쳤다.

“자 따라 해봐. 시어머니 안녕하셨어요.’”

미국에선 너무 바빠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내게 자음과 모음을 가르쳤고 ‘가갸거겨’를 열심히 외우도록 했다.

17일간의 긴 항해 끝에 12월 12일 밤 8시에 부산에 도착했다. 밤에 도착해 한국의 전체적인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불빛이 샌프란시스코와 너무 닮아 있어서 부산도 좋은 집이 많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침에 갑판에 나갔을 때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아름답던 불빛은 알고 보니 수많은 오두막집에서 나온 것이었고 산은 황폐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미국에서 가져온 짐을 인천행 배로 옮겨 실은 뒤 입국 수속을 했다. 남편과 다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탔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가족들은 어떤 분들일까. 만약 나를 환영해 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호기심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남편은 갑판에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오랜만에 만나는 어머니와 가족들이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궁금한 눈치였다.

12월 13일에 인천 앞바다에 화물선이 도착했다. 우리가 가져온 짐이라곤 픽업트럭 한 대와 작은 냉장고 그리고 가방 3개가 전부였다. 가방을 들고 부두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있다. 얼핏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전부다 빌리 친척이에요.”

“아니 나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오늘 무슨 날인 건지도 몰라.”

남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보니 30명 정도는 수원에서 온 친척들이고 나머지는 미국 사람을 처음 보는 구경꾼들이었다.

“아이고 장환아!”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주름살 많은 할머니가 남편의 목을 끌어안았다. 시어머니는 8년 만에 돌아오는 아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남편의 모습을 알아보고 달려 나왔다. 그다음엔 돌아서서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

“네가 장환이 색시냐. 예쁘게도 생겼구나. 꼭 한국 사람 같네.”

어머니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나도 한 식구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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