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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사별 슬픔 안은 채 교회와 이별, 생활 전선으로

입력 2022-01-01 03:10:01
이정정(가운데) 길향옥(왼쪽) 김의숙 사모가 지난해 유튜브 채널 ‘미션라이프’에 출연해 ‘홀사모가 된 뒤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홀사모들의 삶과 아픔을 얘기했다. 유튜브 캡처




나에겐 특별한 사모 친구가 있다. 그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짧은 곱슬머리를 가졌다. 81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SNS에 은혜받은 말씀도 올리고 기도제목도 공유한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에게 친구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이정정 사모와 나는 40여년 세월을 뛰어넘어 ‘사모’라는 공감대로 친구가 됐다. 사모님이 눈물로 헌신해온 70년대 시절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그는 21세기 사모들이 겪는 노고와 어려움 앞에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앞세우기보다 오랜 경험으로 축적한 깊은 지혜로 바른길을 제시한다.

그는 홀사모다. 1997년 남편 배상길 목사가 암으로 별세한 뒤 홀사모가 됐다. ‘홀사모’는 홀로된 사모라는 뜻이지만 현실은 이제부터 ‘홀대받는 사모’가 됐다는 말이라고들 한다. 이 사모를 처음 만난 건 1년 전 홀사모들의 삶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 영상 제작 현장에서였다. 그는 기독교대한감리회 홀사모 공동체인 ‘예수자랑사모선교회’ 소속 회장으로 길향옥, 김의숙 사모와 함께 출연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홀사모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슬프고 애달팠다. 사별 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교회 사택을 쫓기듯 나와야 했던 이야기, 목숨같이 지켜온 교회와 성도를 두고 떠나온 뒤 느낀 단절감은 사모들에겐 목사님이 돌아가신 것만큼이나 큰 고난이었다고 고백했다.

홀사모들에겐 주일이 가장 힘들다. 등록할 교회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교회에 부담이 될까 봐 새가족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예배만 드리거나, 사모인 것을 숨기고 집사나 권사 직분을 받기도 한다.

가장이 된 사모들은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남편과 함께 오롯이 교회와 성도를 위해 헌신해온 사모들은 경력 단절로 재취업조차 쉽지 않다. 몇몇 홀사모는 목회의 경험을 살려 사역자가 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홀사모들은 보험설계사나 붕어빵 장사, 식당 보조, 요양 보호사, 빌딩 미화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아파서도 안 된다고 했다. 자신들이 건강하게 살지 않으면 자녀들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유튜브 채널 미션라이프에 ‘홀사모가 된 뒤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홀사모들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이 영상은 누적 조회수 30만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홀사모들의 이야기에 네티즌들도 함께 울었다. “하나님이 홀사모님들의 수고와 눈물을 닦아주시길 바란다”는 응원과 격려의 댓글이 쏟아졌다.

후배 사모들을 향한 홀사모들의 조언은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 순간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 아내로 겪는 어려운 일들은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힘들어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기쁘게 사역을 감당하세요. 돌이켜보니 목회자 아내의 자리에 있었던 그때가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홀사모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미자립교회 목회자 가정은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교인 수는 점차 줄고 생계의 어려움에 봉착한 목회자와 사모들은 택배 배달이나 냉동 창고, 인력 시장 등에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50대 개척교회 목사가 일용직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목회자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교단이 홀사모와 미자립교회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지만, 단기적 차원의 지원에 머물고 있다. 교회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예수께서 과부와 고아, 작은 자들의 친구가 되셨듯 한국교회도 이 땅의 작은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길 바라본다.

선배 사모의 조언처럼 아내이자 사모로 교회와 가정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사모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2022년 새해에 새로운 인도하심을 기대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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