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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내리는 커피] 원조 카페 전성시대

입력 2022-06-04 04:10:01


달달한 커피를 파는 다방이 넘치던 나라가 어느 순간 쓰디쓴 커피를 파는 카페의 나라가 됐다. 길거리마다 카페들이 넘치고, 농산어촌에도 전망 좋은 곳에는 멋진 카페들이 즐비하다. 카페 전성시대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카페 전성시대다. 원조 카페 전성시대는 100년 전인 1920년대에 시작됐다. 카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1년이었다. 남대문통 3정목에 ‘카페타이거’가 문을 연 것이 시초였다. 일본 최초의 카페인 ‘카페쁘랭땅’과 ‘카페라이온’이 도쿄에 개업한 것과 같은 해였다. 흥미롭게도 일본은 사자카페, 조선은 호랑이카페다.

1920년대에 커피를 팔던 업소의 명칭은 다양했다. 카페 이외에도 끽다점, 바, 다실, 다방, 살롱 등이 있었다. 성업 중인 것은 단연 카페였다. 술을 팔지만 커피도 제공하고, 웨이트리스라는 여급이 있었던 것이 성업의 배경이었다. 1920년대 중반 서울에만 100개 넘는 카페에 1000명 이상의 웨이트리스가 일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도 50개 넘는 카페가 성업 중이었고 대구, 목포, 군산, 남포 등 중소도시에도 카페는 넘쳤다.

당시 카페 유행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많다. 1925년 5월 부산일보 광고에 ‘카페 런던’이 시설을 확장해 여급 12명을 두고 영업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실렸다. 개업 후 장사가 잘돼 확장한 것이다. 1924년 조선 첫 당구장 ‘무궁헌’은 1932년에 ‘카페 평화’로 전업했다. 1932년에는 평양에 있던 유곽, 즉 성매매업소 건물 16채를 모두 개조해 카페화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돼 논란이 일었다.

1931년 일본 오사카의 유명 카페 ‘미인좌’가 경성에 진출했고, 미인좌를 본떠 남산장에 문을 연 ‘카페 아리랑’은 도쿄에서 17명의 웨이트리스를 직접 비행기로 모셔왔다. 1931년 조선 안에서는 금지된 외국인 웨이트리스를 무허가로 고용한 혐의로 미인좌와 아리랑은 과료를 물었다. 미인좌는 러시아 여자 마리아를, 아리랑은 독일 여자 리레메를 고용한 것이 문제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 1926년 다이쇼 일왕 사망, 그리고 1929년 대공황의 시작으로 일본 경제는 위축되고, 카페산업은 하향길에 접어들었지만 조선의 카페는 성업 중이었다. 1929년 커피 수입이 전해에 비해 양으로는 34%, 금액으로는 149% 격증했다. 부산일보는 상주에 있는 현대식 카페가 “만원성황”(1932년 3월), 부산의 봄은 “카페시대”(1932년 3월)라고 보도했고, 조선중앙일보는 “오직 늘어나는 것은 카페와 여급뿐”(1933년 11월)이라고 표현했다.

100년 만에 다시 카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팬데믹으로 많은 나라가 커피 수입을 축소할 때도 우리는 커피 수입을 늘렸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100년 전 원조 카페 전성시대의 뒤에 찾아온 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커피 냄새로 가득해야 할 카페에서 술 냄새가 넘친 후 전쟁이 찾아왔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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