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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송세영] 다시 뜨겁게 기도할 때

입력 2017-03-23 09:24:55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인 1997년 11월 28일, 초겨울 바람이 차가운 가운데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여전도회관 앞에 100여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4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들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경건과 절제 운동으로 경제를 살리자’ ‘작은 외화라도 금융기관에 맡기자’ ‘해외여행과 외제상품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가두행진을 한 뒤에는 집에서 가져온 10달러, 20달러짜리 외화를 은행에 맡겼다. 연합회는 이날부터 40일간 특별기도회를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외화 모으기와 기도운동에 돌입했다. 

이튿날인 29일에는 교계 원로들이 비상시국간담회를 가졌다. 이틀 뒤인 12월 1일에는 주요 15개교단장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그동안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외화 모으기와 근검절약 운동에 나섰다. 전국 교회들도 30일 특별새벽기도회 등을 가지며 위기극복을 간구했다.  
 
IMF 외환위기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 국가 부도, 국가 파산이라는 초유의 경제위기 앞에 대한민국은 경제주권을 IMF에 양도해야 했다. IMF의 구조조정 요구는 혹독했다. 굴지의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수많은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등 가혹한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4년도 지나지 않은 2001년 8월 23일,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 졸업을 선언할 수 있었다. 금 모으기로 상징되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막론하고 대통합을 이뤄낸 역사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교회도 바로 그 가운데 있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국가적 위기사태 앞에 믿음의 방패를 들고 뜨겁게 기도했다. 교회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죄를 회개하며 이 나라를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었다. 외화 모으기, 금 모으기에 동참하며 근검절약 운동을 전개했고 노숙인과 실업자 등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구제에도 앞장섰다.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에 전개했던 국채보상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의 정신이 되살아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둘러싸고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2017년의 대한민국도 IMF 외환위기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 일본의 우경화 등 한반도 주변 현실은 당시보다 훨씬 더 엄혹하다. 

앞으로 최대 고비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각하하든 불만을 품은 쪽의 격렬한 저항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맹목적 분노를 부추기고 폭력과 파괴를 선동하는 극단적 세력도 준동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다시 뜨겁게 기도해야 할 때다. 탄핵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헌법재판소의 선고에 승복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 나라가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선고 결과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력으로 비화되거나 극심한 좌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처받은 이들을 품어야 한다. 국가적 위기 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정성진 거룩한빛광성교회 목사가 2일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설교에서 전한 메시지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교회는 소망을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고 도피성과 같은 생명의 피난처가 돼야 한다”며 “광장의 소리와 군중의 함성에 빠지지 말고 편을 갈라서도 안 되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 모두 탄핵 선고와 함께 각자 제자리로 돌아와 이 나라의 회복을 위해 엎드려 기도하길 소망한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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