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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미녀와 야수’] 디지털 옷 입고 젊어지다

입력 2017-04-10 10:31:39



1991년 작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리메이크한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2017년에 ‘미녀와 야수’를 보러 극장에 가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착한 미녀가 아버지를 대신해 무서운 야수의 성에 갇히지만 추한 외모 아래 감춰진 야수의 진심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 마녀의 저주를 풀게 만든다는 이야기. 300년 전 프랑스 작가 잔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이 민담을 바탕으로 쓴 후 어린 시절 누구나 듣고 자란 뻔한 동화 말이다. 영화의 유명한 주제가도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라는 가사로 시작되지 않던가.
 
이 유명한 동화를 각색한 영화는 많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버전은 1991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원작에서 상당히 멀어진 각색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번에 개봉한 ‘미녀와 야수’는 이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을 재해석하거나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형상화 되었던 판타지의 세계를 실제 배우들의 연기로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 미녀가 소개되는 도입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영화 장면들은 애니메이션을 한 컷씩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주제가와 주요 장면의 테마곡들, 대사까지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91년 작에 매료됐던 사람들의 기억에 호소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듯하다. 단순하고 평평한 셀 애니메이션은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디지털 기술 덕분에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미녀 역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헤르미온느를 연기한 엠마 왓슨이 맡았다. 책벌레인 데다 똑똑하고 정의로우며 용감하기까지 한 소녀라는 점에서 두 캐릭터는 매우 닮았다. 디즈니가 야수를 구원할 미녀 역에 그녀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당연하다. 이처럼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는 유년 시절에 애니메이션을 보며 환호했고 ‘해리 포터’를 읽으며 어른이 된 세대를 향한 윙크처럼 보인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애니메이션의 재탕임에도 여전히 관객들이 극장을 찾도록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모든 고전들이 그렇듯 이야기 자체가 담고 있는 보편적 진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원작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활용되지만, 어른의 눈에는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으로 새롭게 읽힌다. 공통점이 없는 두 남녀가 티격태격하다 어느 순간 친구가 되고, 결국 사랑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는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으로 강조된다. 미녀가 셰익스피어를 언급하자 야수는 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로 화답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저 그런 신파잖아요.” 그리고, 야수는 자신의 멋진 도서관으로 미녀를 안내한다. 생각과 취향과 말이 서로 통한다고 느낄 때, 사람에게 문득 ‘반하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굳이 실사로 리메이크한 ‘미녀와 야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원작동화의 분위기와 내용에 충실한 다른 걸작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프랑스의 대표적 문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가 1946년 만든 ‘미녀와 야수’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 2014년 개봉한 크리스토프 강스 감독의 ‘미녀와 야수’도 있다. 레아 세두와 뱅상 카셀의 연기가 색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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