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HOME  >  인터뷰  >  USA

장애인 위해 미국 자전거 횡단 도전하는 시각장애 석진우 목사… 뉴욕∼LA 5500㎞, 희망 라이딩

입력 2017-05-17 00:05:01



“장애인으로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11년 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약 400㎞를 달린 게 시작이었죠. 다음 달엔 미국 대륙 횡단에 도전할 겁니다.”

최근 서울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석진우(49·시각장애 2급) 목사는 스마트폰으로 미국지도를 확대해 보여주며 당차게 얘기했다. 그는 지난 11년 동안 제주도 투어, 4대강 투어, 대한민국 해안도로 투어 등의 이름으로 전국 곳곳을 누볐다. 짧게는 350㎞부터 1000㎞ 넘는 여정까지 주행한 거리만 약 6500㎞다. 두 개의 바퀴가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그의 가슴과 배낭엔 ‘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이란 메시지가 항상 붙어 있었다.

석 목사는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고 용기를 잃은 채 삶을 포기하는 장애인들을 많이 봐왔다”며 “멍든 가슴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자전거에 몸을 싣게 됐다”고 말했다.

또래들보다 체격도 좋고 건강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15세 때 급성 녹내장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실명 위기를 맞은 것. 집안에선 난리가 났다. 1남2녀 중 장남이었던 석 목사의 눈을 고치기 위해 온가족이 팔을 걷어붙였다. “‘용왕님이 노한 것’이란 얘기에 대구 팔공산의 사찰에 가서 공양을 드리고 잿물도 먹어보고 용하다는 침술사를 찾아 두메산골로 들어가 보기도 했죠. 2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18세 되던 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기도원을 찾은 게 전환점이 됐다. 금식기도를 하던 석 목사는 닷새째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병 낫기를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지를 생각하며 기도하라’는 음성을 들은 것이다. 기도원을 나선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총신대 신대원에 다니던 시절엔 장애인선교회 회장을 맡아 장애인을 위한 환경 및 인식 개선에 힘썼다. 캠퍼스 내 지체장애우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 매년 4월 열리는 ‘장애체험의 날 행사’ 등이 석 목사의 손에서 처음 시작됐다. 대구 지역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석 목사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없애기’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의 도움으로 2006년 첫 자전거 횡단에 나섰다.

“첫 횡단 때는 렌트한 승합차에 동기들이 타고 뒤따르는 저를 향해 ‘좌회전’ ‘우회전’ ‘정지’를 수천번 외쳤죠. 혼자 4대강 투어에 나섰을 땐 맨홀 뚜껑이 열린지도 모른 채 달리다가 앞바퀴가 구멍에 빠지면서 아스팔트 바닥 위를 몇 바퀴 구르기도 했어요.”

몇 년 전까지 4급이었던 장애등급은 2급으로 올라서 희미하게 윤곽만 알아보는 정도가 됐다. 석 목사는 “지금도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두 바퀴와 함께 전달될 희망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멈출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석 목사는 자전거횡단을 할 때마다 후원을 받아 고아들을 위한 해외비전트립 비용,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 병원비 등을 지원해왔다. 이번 미국 대륙 횡단을 통해선 장애청소년과 조손가정 청소년 20명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꿈’을 주제로 여행기회를 주는 게 목표다.

석 목사의 자전거가 달릴 구간은 뉴욕부터 로스앤젤레스까지 약 5500㎞. 뉴욕에서 오하이오, 인디애나를 거쳐 시카고까지 약 1500㎞를 이동해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도로인 ‘루트 66’을 따라 약 4000㎞를 횡단하는 90일간의 대장정이다.

그는 “2008년 미국 횡단에 도전했지만 당시엔 후원금이 끊겨 중단해야 했다”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희망’이란 단어를 아는 모든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나이 50을 문턱에 둔 그는 매일 5시간, 80㎞ 구간을 달리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는 만큼 전진합니다. 장애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에너지가 제 다리에 힘을 더해줄 것이라 믿습니다.”(후원계좌: 대구은행 010-9985-8947, 예금주: 석진우)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