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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불황 난국, 사회적 경제로 돌파

입력 2017-05-19 05:05:04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는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했다. 최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계기로 빈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최고은법’ 제정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최씨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고로 난관에 봉착한 이들은 수없이 많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데도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L자형 불황’(장기 불황)을 맞으면 정부·기업·가계의 수입이 급감하고 복지정책마저 후퇴해 서민은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이런 시대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경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우석훈(49)은 말한다.

불황일수록 사회적 공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적 경제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라고 주문한다. 사회적 경제의 주축인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가 본궤도에 오르려면 지역 경제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일본 고베나 스페인 몬드라곤처럼 협동조합 중심의 네트워트가 형성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지방 취업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사회적 경제가 경제 인프라이면서 사회 안전판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좌파 정책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대 정권의 정책을 보더라도 사회적 경제가 좌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싹텄다. 김대중정부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활정책을 펴면서 자치조직이 태어나는 데 일조했다. 김대중정부에서 발아한 사회적 경제는 노무현·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관련 법도 만들어졌다.

사회적 경제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한 편이다. 저자는 이 비중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경제 영역으로 아파트 협동조합, 에너지 분야, 로컬푸드를 꼽았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주택협동조합의 역할은 중요했다. 우리 사회에도 임대아파트 사업에 협동조합이 사업 주체로 참여했거나 소규모 공동주택 마련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기업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토지를 임대하고 협동조합이 건물 부분을 책임지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프랑스나 스웨덴처럼 아파트 협동조합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한전과 한전 자회사를 통해 전기를 관장하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사회적 경제가 기여할 부분은 많다. 지역의 태양광 시공 사업은 사회적 기업이 맡고, 유지·관리 업무는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기술적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방정부가 태양광 분야의 시민 파트너로 협동조합 형태를 선호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역 농산물 위주로 식품 시장을 재구성하는 로컬푸드는 사회적 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인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 정부나 농협이 상당한 매장 비용을 지원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돈이 지역 안에서 돌아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전북 완주, 경기도 김포의 로컬푸드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짧은 기간에 사회적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시민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종교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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