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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호모 사피엔스 다음의 인류는…

입력 2017-05-19 05:05:04




‘이 책의 예측은 예언이라기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당부가 간단없이 이어지지만 독자들 가운데 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이것은 파워풀한 내용이 담긴 예언서다. ‘미래는 이런 모습일 수 있다’가 아니라 ‘미래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단언하는 뉘앙스를 시종일관 느낄 수 있어서다.

지은이는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의 궤적을 되짚은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유발 하라리(41). 전작에서 그랬듯 특유의 박람강기(博覽强記)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짜깁기’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지만, 온갖 학설을 그러모아 세련되게 엮어내는 데 유발 하라리만한 학자가 또 있을까 싶다. 가독성도 상당해 첫 장을 읽으면 끝까지 보게 된다.

일단 제목 얘기부터. 라틴어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신이 된 인간’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지금의 인류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가 머지않은 미래에 ‘호모 데우스’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현재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룬다. 이를 통해 훗날 출현할 초인간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내다볼 수 있어서다. 2부에서는 인간이 어쩌다 인간만을 숭배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지고의 가치로 삼게 됐는지 살핀다.

백미는 3부다. 제목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미래에는 대다수 인간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정보와 데이터를 숭배하는 사상이 세상의 조종간을 잡는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사라진다. 데이터의 ‘흐름’만 중시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21세기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그런 다음에는 데이터로 전락할 것이고, 결국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진 흙덩이처럼 데이터 급류에 휩쓸려 흩어질 것이다.’

전작이 그랬듯 한 발짝 물러서서 역사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살피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흡입력을 배가시키는 문장력도 엔간한 수준을 넘어선다. 가령 전쟁의 공포가 사라졌다는 점을 얘기하면서 현재의 테러리즘을 이렇게 규정한다.

‘테러범들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와 같다. 파리는 힘이 없어서 찻잔 한 개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황소를 찾아내 그 귓속에 들어가 윙윙거리기 시작한다. 황소는 공포와 화를 참지 못해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하지만) 테러범들은 그들의 힘으로 우리를 끌고 중세로 돌아가 정글의 법칙을 재건할 수 없다.’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불편할 것이다. 불온서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저자는 종교가 진작에 용도 폐기된 사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언젠가부터 ‘창조하는 힘에서 반응하는 힘’만 과시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반론을 제기하려면 불문곡직하고 일단 이 책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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