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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개비 타듯… 24층 4시간 만에 전소 ‘아비규환’

입력 2017-06-14 18:50:01
14일(현지시간) 새벽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영국 런던의 ‘그렌펠 타워’ 아파트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화재 발생 후 12시간 이상 지난 시간인데도 잔불이 남아 연기가 계속 났다. 불길은 잡혔지만 붕괴 위험 때문에 소방대원들이 고층으로 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AP뉴시스


영국 런던에서 고층 아파트가 화재로 전소돼 최소 6명의 주민이 숨지고 74명이 부상했다. 현지 일간 가디언과 AP통신에 따르면 14일 새벽 1시쯤(현지시간)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의 24층짜리 ‘그렌펠 타워’에 큰불이 나 건물 전체를 덮쳤다. 2층에서 시작된 불은 빠른 속도로 꼭대기 층까지 번져 건물이 전소됐다.

런던 소방 당국은 소방차 40대와 소방관 200명을 출동시켜 화재 진압에 나섰으나 불길이 거세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로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 몇 ㎞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소방 당국은 오전 4시 전까지 구조 및 대피가 이뤄졌으며, 5시쯤에는 완전 전소됐다고 밝혔다. 부상한 74명 가운데 20여명은 위독한 상태다. 특히 실종자가 여전히 많아 앞으로 며칠간 진행될 수습과정에서 사망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경찰은 전망했다. 1974년 건설된 이 건물에는 120가구가 입주해 있지만 정확한 거주자 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화재가 발생해 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특히 화재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피해가 컸다. 목격자들 사이에선 “창가로 나와 담요를 흔들며 구해 달라고 절규하는 사람을 봤다” “꼭대기 층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주민은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수백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구체적인 실종자 숫자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미라 람라니는 “9∼10층에서 한 여성이 창문을 열더니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낸 뒤 아기를 밖으로 던지자 한 남성이 달려가 가까스로 아이를 받아냈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창문을 두들기며 얼굴을 내밀고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다”며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건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CNN방송은 불타는 사람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아파트 3층에서 살았다는 샤르 나샤반디는 “새벽 1시45분쯤 귀가해 보니 건물에 불이 나 있어 동생에게 전화해 나오라고 했다”며 “23층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삼촌에게 내려오라고 했는데 나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했다.

17층에 사는 데이비드 벤저민은 “성냥개비에 불이 붙듯 불길이 거세게 위로 번지는 걸 보고 68세 숙모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며 “더 오래 기다린 사람들은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아파트 주변과 인근 커뮤니티 센터에도 애타는 사연이 많았다. 한 여성은 친구의 5살 딸이 보이지 않는다며 수소문하고 다녔다. 처남 부부와 세 아이를 찾고 있다는 한 남성은 “처남에게 탈출하라고 하니 ‘나갈 수 없다’면서 타월로 바닥 문틈을 막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 사이에선 “현장 안내는 물론 상황통제가 안 돼 혼란이 더 컸다”며 당국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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