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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프로 이야기꾼이 포착한 인생의 번뜩이는 순간들

입력 2017-06-16 05:05:03


웃게 했다가 울게 만드는 신통방통 이야기꾼 성석제의 짧은 소설 모음집. 여기 실린 소설은 짧으면 2쪽, 길어도 10쪽 안팎이다. 인생의 번뜩이는 순간을 포착해 던지기에 제격이다. 흔히 엽편 또는 단편소설이라고 한다. 최근까지 쓴 신작과 이전에 쓴 소설 55편이 실렸다. 아무 데나 들춰보자. 운이 좋으면 ‘힛힛힛’ 웃음이 날 것이고, 운이 없으면 뜻하지 않게 한참 마음이 쓰릴 것이다.

운이 좋았던 ‘인간의 예의’. 공예품을 사고파는 친구 만호를 따라 커다란 기와집에 가게 된다. 주인 남자는 눈을 내리깔고 마당의 나무 자랑을 해댄다. 그는 방문자에겐 권하지도 않고 혼자 포도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알을 빨아들이고 ‘퉤’ 하고 씨와 껍질을 뱉으며. 배가 살살 아픈 ‘나’는 소심한 복수로 조용히 방귀를 뀐다.

‘나’는 남자의 지루한 얘기 사이사이 가스를 배출하며 쾌감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다. 마침내 주인은 포도의 마지막 한 알을 다 먹곤 쏘아보며 말한다. “거 방귀 좀 고만 뀔 수 없어? 나가서 뀌고 오든가. 사람이 예의가 없어. 재미 들이면 똥까지 싸겠구만.”(63쪽) 대체 예의가 없는 게 누군데? 마지막 대목에서 폭소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안해할 줄 안다’는 외제차를 몰던 ‘나’가 접촉사고로 만난 택시기사 이야기다. 묵은 때가 낀 제복을 입은 60대 초반의 기사는 뒤에서 들이받은 게 너무 미안하다. 그는 미안함의 표현하기 위해 엉겁결에 ‘내’ 등을 세차게 내리친다. 이어 뽀득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소매로 차 범퍼를 정성껏 닦는다. ‘나’는 차에 난 흠보다 기사에게 맞은 등짝의 후끈거림을 더 오래 기억한다. 왠지 마음 한편이 아릿해진다.

삶의 작은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성석제의 소설은 문학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특유의 해학 풍자 입담이 멋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고압선에서 튀는 불꽃 같은, 서늘한 한 줄기 바람처럼 흘러가고 벼락 치듯 다가오는 우연과 찰나의 연쇄가 나를 흥분시킨다”고 말한다. 삶의 순간순간이 지루하다면 그의 소설을 펴보자. 그가 ‘황홀한 순간’을 느끼도록 우리의 오감을 열어줄지 모른다.

성석제는 신작이 담긴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외 데뷔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1994)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2003) 개정판을 함께 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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