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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코크형제의 돈은 어떻게 워싱턴을 장악했나

입력 2017-06-16 05:05:03
미국 정계를 주무르는 형제 찰스 코크(오른쪽 사진)와 데이비드 코크. 이들 형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뉴시스




이건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장막 뒤에서 세계의 조종간을 움켜쥐고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것도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말이다.

얼마간 두려운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이 책 ‘다크 머니’는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역작이다. 저자는 미국 뉴요커의 여성 저널리스트 제인 메이어(62). 메이어는 극우 성향 부자들이 정계를 조종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국의 금권정치 행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찰스 코크(82)와 데이비드 코크(77)다. 형제인 두 사람은 석유 천연가스 비료 등을 다루는 대기업 ‘코크인더스트리즈’에서 각각 CEO와 부사장을 맡고 있다. 형제의 재산을 합치면 빌 게이츠의 자산(750억 달러)을 뛰어넘어 800억 달러를 웃돈다. 세계 최고의 갑부인 셈이다. 두 사람은 권력의 꼭짓점에 앉아 정계 교육계 사법계 학계를 좌지우지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뒤흔든다.

코크 형제는 이문을 좇는 데 급급하면서 정부를 백무소용의 존재로 여기는 자유지상주의를 떠받든다. 저자는 이들의 위험한 사상이 배태된 근원을 캐기 위해 코크 가문의 역사를 조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가 아돌프 히틀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협력해 돈을 벌었고, 형제는 엄격한 가풍 아래에서 성장했다는 내용이다.

형제가 정계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데이비드 코크는 80년 자유당 소속으로 미국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형제는 이때부터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다. 학계에 자금을 쏟아 부어 자신들의 주장을 국가적 현안으로 부각시켰고,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회에 압력을 넣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보수 성향 기업가들을 규합해 이 집단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메이어는 ‘코크 가문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휘둘렀던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 가문이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물론 코크 형제가 실패를 경험한 적도 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8년,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2012년은 이들에게 위기 그 자체였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을 때 코크 형제가 주최한 모임에 참석한 누군가는 당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격정적인 모습을 전하면서 이렇게 회상한다. “마치 고릴라들이 모여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코크 형제는 이때부터 공화당을 사실상 ‘접수’하는 일에 뛰어든다.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쏟아 붓는다. 정치 정보를 다루는 기업을 인수해 미국 유권자 1억9000만명의 성향을 분석하는 작업에도 착수하면서 공화당과 공조 체제를 이룬다. 미국 민주주의언론센터 소장인 리사 그레이브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코크 형제는 외부에서 당을 하나 만들어 공화당에 잠식해 들어왔다. 마치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듯 말이다.”

그렇다면 코크 형제와 현재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관계는 어떨까. 코크 형제는 트럼프를 ‘기괴한 인물’이라며 그와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트럼프도 2015년 8월 코크 형제가 주최한 모임에 초청받지 못하자 SNS에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코크 형제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모든 공화당 후보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듣고들 있나 꼭두각시?’라고 적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를 들여다보면 코크 형제와 은밀하게 얽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중앙정보국(CIA) 국장인 마이크 폼피오는 과거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코크 형제의 하수인이라는 의미에서 ‘코크 가문의 하원의원’이라고 부르곤 했다.

메이어는 베일에 가려진 이들의 행각을 파헤치기 위해 5년간 코크 형제와 관련 있는 인물 수백 명을 인터뷰했고, 각종 자료를 그러모았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과 함께 ‘올해의 책’ 10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첫머리에는 메이어가 올해 추가로 내놓은 페이퍼백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나’도 실려 있다.

찰스 코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눠 가져야 할 때면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그저 정당한 내 몫을 받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전부 다 가져야겠어.”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정치가 지금 상태로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대단한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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