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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장재가 불쏘시개… “런던 참사는 사실상 과실치사”

입력 2017-06-15 18:25:01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5일(현지시간) 런던의 그렌펠 타워 화재 현장을 찾아 소방 관계자로부터 내부 수색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14일 새벽(현지시간) 런던에서 발생한 ‘그렌펠 타워’ 화재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은 이 건물 부자재인 알루미늄 합성 피복(Cladding) 때문에 화마가 순식간에 번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국 내 빌딩 수만채에 이 같은 피복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전불감증에서 촉발된 ‘후진국형 참변’이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현지 매체 텔레그래프는 15일 런던 서부 노스켄싱턴 랑카스터 지역 그렌펠 타워에서 전날 발생한 화재로 최소 17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79명이 부상했고 이 중 17명은 위독하다. 실종자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127가구에 입주민만 600∼8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설 것이란 추정도 제기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가스관이 파열된 데다 건물 붕괴 위험도 있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층 가정집 냉장고에서 불꽃이 튀었거나, 가스 공급 설비에 문제가 생겨 폭발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1000만 파운드(약 143억2370만원)를 들여 개보수를 마친 그렌펠 타워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외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외벽에 피복을 부착했다. 불길이 이 피복을 불쏘시개 삼아 태우며 순식간에 번졌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손 쓸 틈 없이 건물 전체가 연소됐다.

이 피복은 알루미늄 철판과 폴리에틸렌 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 매슈 니드햄 라잉은 “영국 내 빌딩 약 3만채가 이 같은 피복을 부착했다”며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마이크 페닝 전 소방국장도 “영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던 피복”이라며 “노후 건물을 중심으로 긴급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 건물이 화재에 취약하고 참사 위험이 있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음에도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화재에 대비해 건물 외부에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렌펠 타워의 유일한 비상계단은 막혀 있었다. 여기에 피복이 화재 발생 시 위험하다는 사실이 1999년부터 제기됐으며, 고위 공무원들이 이 경고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도 드러났다. 한 입주자는 “아파트에 닥칠 재앙이 시간문제라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데일리메일은 “관리 주체인 켄싱턴 첼시 임대 관리 조직(KTMO)은 심각한 과실치사 사건에 직면해 있다”고 비난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역은 빈부격차가 심했다. 인근 노팅힐엔 부유 저택이 즐비했지만 그렌펠 타워 같은 저소득층 주거 공간도 혼재하는 곳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사고 이후 “임대주택에 사는 바람에 소외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입주민 대다수가 모로코와 소말리아 등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였다. 런던 시민들은 이재민을 위해 식사와 생필품, 의류, 장난감 등을 모아 고통을 나누고 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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