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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뚫고 빛의 길 따라가면 신라의 꿈에 닿을까

입력 2017-06-22 00:10:01
충북 보은군 회인면 건천리 수리티(재) 위 푯대봉에서 내려다본 전경이 장쾌하다. 여명 속에 불화살 같은 청주영덕고속도로가 옅은 안개를 뚫고 뻗은 모습이 시원하게 보인다. 왼쪽 아래 25번 국도는 삼년산성이 있는 보은읍내로 이어진다.
 
직사각형 판석 1000만개 이상으로 견고하게 축조된 삼년산성이 용틀임을 하며 뻗어 있다.
 
보성 선씨 종갓집 ‘선병국 가옥’의 안채.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충북 보은은 서울·부산 등지에서 2시간대에 도달할 수 있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예부터 경상·전라·충청의 교착지점으로, 이곳을 점령하지 않고는 그 어느 쪽으로도 진출할 수 없는 삼남의 요충이었다. 정이품송, 솔숲공원 등 소나무의 고장다운 면모도 간직하고 있다.

1500년 된 철옹성, 삼년산성

서북진을 꿈꾸던 신라와 남진을 하려던 고구려, 동진을 노리던 백제가 전략적 요충지 보은 땅에서 맞섰다. 신라는 이곳을 잃으면 경주도 위험할 수 있었고, 이곳을 지키면 청주를 거쳐 한강 유역까지 노릴 수 있었다.

신라는 470년 자비왕 때 오정산(325m) 능선에다 인부 3000명을 동원해 크고 단단한 성을 지었다. 삼년산성(三年山城·사적 제235호)이다. 3년간 성을 축조했다.

성을 멀리서 보면 봉우리와 봉우리를 묶은 가느다란 무명 리본처럼 보인다. 서문지에 이르면 양쪽 석벽이 성벽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연석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만든 판석 1000만개 이상을 사용해 ‘우물 정(井)’ 자 형태로 가로와 세로를 엇갈려 쌓았다. 내부가 흙으로 채워진 다른 산성과 달리 내부까지 돌로 채워져 매우 정교하고 견고해 보인다.

성벽의 높이는 13∼20m, 너비는 8∼10m, 전체 길이는 1680m 정도 된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은 모두 다른 구조로 설계했다. 북문은 두 개의 보조 석축을 쌓아 옹성과 같다. 동문은 ‘ㄹ’자 형태로 꺾어 놓았고, 남문은 성벽에 창문처럼 매달아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성벽 바깥에 반원형의 옹성을 따로 만들어 방어력을 높였다. 150여 차례 전투에서 단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성의 내부는 바구니처럼 오목한 골짜기다. 논밭은 물론 연못,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을 따라 가면 사방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반듯하게 복원된 성벽을 지나면 허물어진 옛 성벽이 나타난다. 무너져 너덜을 이룬 곳조차도 장대하다. 남문터와 동문터를 지나면 전망이 가장 빼어난 옛 봉수대다. 지금은 전망대로 이용된다.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오리 대감의 전설 품은 피반령·수리티(재)

충북 청주에서 보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피반령(皮盤嶺)과 수리티(재)가 있다. 이들 고개에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과 연관된 전설이 서려 있다.

이원익이 경주 목사로 부임하던 중 청주에 도착하자 경주 호장(향리직의 우두머리)이 가마를 갖고 마중나와 있었다. 음력 6월 더운 날씨에 가마꾼들이 힘들어했다. 고개가 나타나자 호장은 “이 고개는 삼남지방에서 제일 높아 가마를 타면 가마꾼들이 피곤해 회인에서 3∼4일 묵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속히 부임지에 도착하고자 했던 이원익은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속았음을 눈치챈다. 그는 “신분이 다른 너와 내가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 내가 걷고 있으니 너는 기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손과 무릎이 피투성이가 돼 고개를 기어 넘어야 했던 호장은 또 다른 고개를 마주치자 겁이 났다. 호장은 나무로 수레를 만들도록 한 뒤 수레에 가마를 실었다. ‘피발’이 돼 넘어 ‘피발령’, 수레로 넘어 ‘수리티(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자로는 ‘피반령’ ‘차령(車領)’으로 적었다.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저택, 선병국 가옥

‘선병국 가옥’은 보성 선씨 종갓집이다. 전남 고흥 거금도의 거상이었던 선정훈(선병국의 선친)이 전국을 돌다 찾아낸 명당에 지었다. 1909년부터 1921년까지 12년 걸려 ‘아흔아홉칸’을 완성했다.

크게 안채 사랑채 사당의 3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각 공간은 안 담으로 둘렀고 바깥 담이 다시 전체를 둘러싼 형태다. 성벽 안의 작은 마을 같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건너로 사랑채를 둘러싼 담과 중문이 보인다. 길게 바깥 행랑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빈터다. 3단의 석축기단 위에 H자 모양의 사랑채는 공사중이다. 안채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와 마주 보며 사랑채가 있는 서쪽을 향해 앉아 있다. 규모와 기둥 모양, 처마 등은 사랑채와 같지만 기단이 한 단 낮다.

안채의 북쪽 협문 앞에 장독대가 대단하다. 종부는 소나무 숲을 지나 흐르는 지하수로 장을 담근다. 대대로 이어진 ‘덧간장’의 씨간장은 350년 역사를 자랑한다.

‘600년 고관대작’ 정이품송이 있는 소나무의 고장

‘소나무의 고장’ 보은을 대표하는 정이품송은 세조가 행차할 때 가마에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들어 벼슬을 하사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좌우대칭을 자랑했으나 많이 상해 반쪽이 됐다. 서원리에 정이품송의 부인으로 불리는 정부인송이 있다.

솔향공원에는 소나무 관련 전시실도 있지만, 스카이바이크가 인기다. 수령 250년 된 노송이 군락을 이룬 임한리 솔숲은 안개 낀 새벽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여행메모
산책로·등산 코스 고루 갖춘 속리산… 엽서 속 그림 같은 원정리 느티나무


충북 보은의 수리티(재)로 가려면 청주영덕고속도로 회인나들목에서 나가는 것이 빠르다. 송평사거리에서 좌회전해 25번 국도를 따라 5㎞ 남짓 가면 된다.

삼년산성으로 바로 가려면 보은나들목으로 나가 보은읍 보은군청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군청 맞은편 성주리 마을 안으로 들어간 뒤 보은정보고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150m 가면 된다. 승용차로 산성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

선병국 가옥은 속리산나들목에서 가깝다. 25번 국도를 타고 북향해 장안면으로 간 뒤 장내삼거리에서 우회전, 장안면사무소 지나 속리초교 앞에서 하개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속리산(1058m)도 빼놓을 수 없다. 가는 길에 정이품송도 만난다. 법주사를 지나 속리산 세심정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책로를 걸어볼 만하다. 상가지구에서 50분 남짓, 법주사에서는 20분이면 닿는다. 속리산 등산은 세심정에서 문장대(1054m)로 오르는 코스가 인기다. 3.3㎞ 남짓. 왕복 4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보은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여럿 있다. 임한리의 솔밭공원과 원정리의 느티나무가 대표적이다. 솔밭공원은 가지를 뒤튼 소나무들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고, 원정리 느티나무는 그림엽서 속 사진처럼 너른 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숙소는 대부분 속리산 입구에 몰려 있다. 놀이시설과 산책로 등을 갖춘 충북알프스 자연휴양림(043-543-1472), 말티재자연휴양림(043-543-6282)에 묵어도 좋다. 한정식을 내놓는 경희식당(043-543-3736)은 맛집으로 이름나 있다.

보은=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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