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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애지중지 키운 한식에 거침없는 회초리

입력 2017-06-23 00:05:01
음식평론가 이용재는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이 완전히 결여된 채 한식을 홍보해왔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깍두기 김치 고추조림 등이 차려진 밥상이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이들 음식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쏟아낸다. 픽사베이 제공




이렇게 한식을 헐뜯고 깔아뭉개는 책을 만난 적이 있던가. 이 책 ‘한식의 품격’은 작심하고 쓴 한식 비평서다. 민감한 얘기라고 변죽만 울리거나, 반박이 예상된다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명한 문장으로 간단없이 내던지는 가독성 높은 신간이다.

저자는 2013년 우리네 외식의 허술한 실상을 고발한 ‘외식의 품격’으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음식평론가다. 첫머리에는 유명 요리사인 박찬일의 추천사가 실렸는데, 그는 저자를 ‘당대 음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지난 정부에서 재단까지 만들어 세금을 쏟아 붓고도 아무런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던 ‘한식’이라는 무정형의 안개 속에 그는 새로 등대를 놓았다. 이른바 집밥에서 최고급의 한식당까지, 그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 장을 펴라. 그럼 됐다.’

도대체 뭔 내용이 실렸기에 이런 찬사를 늘어놓은 걸까. ‘첫 장을 펴라’는 주문에 따라 서문을 펼쳤더니 시작부터 점입가경이다. 상호(商號)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웬만한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짐작할만한 유명 곰탕집을 도마에 올린다.

곰탕집에 입장해 밥을 먹고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다. 계산대에서 선불을 한 뒤 구깃구깃한 식권을 받아들고 끈적끈적한 계단을 올라간다. 식당은 이미 만원.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합석을 하니 이윽고 곰탕이 나온다. 그럴듯한 놋쇠그릇에 담겼는데, 테이블 한쪽에는 놋쇠그릇과 당최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 소쿠리가 놓여있다. 파가 담긴 소쿠리다.

많은 사람은 무심하게 넘길 이 풍경이 저자는 마뜩잖다. ‘열악한 환경에서 비싸지만 빈약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다. 비난 섞인 한탄이 이어진다. ‘이런 수준의 음식을 과연 전통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호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근거 없는 무차별 비난을 퍼붓는다고 예단해선 안 된다. 맛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웬만한 독자라면 혀를 내두를 만큼 전문적이다. 5개의 기본 맛(짠맛 단맛 쓴맛 신맛 감칠맛)을 중심에 놓고 한식에서 무엇이 과하고 부족한지 설명한다. ‘만능 양념장’으로 원재료의 맛을 덮어버리는 요리법에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요령부득인 한식의 상차림을 꼬집는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가령 콩국수 식당들은 소금을 어떻게 사용할까. 많은 식당에서는 간을 하지 않은 밍밍한 콩물에 소면을 말아 내놓는다. 간을 맞추는 건 손님의 몫이다. 그런데 식탁에 놓인 소금은 보통 입자가 굵다. 잘 녹지 않으니 간을 조절하는 데 적절치 않다. 제대로 된 콩국수 식당이라면 요리사가 미리 간을 맞추거나, 식탁에 곱게 간 소금과 씹을 때 ‘악센트’를 주는 굵은 소금을 같이 내놔야 한다.

화학조미료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화학조미료가 인체에 엄청 해롭다는 건 낭설에 가깝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으로 감칠맛을 내는 데 화학조미료만한 게 없다. 우리네 밥상에 자주 등판하는 김치 전 만두 직화구이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낸다.

아울러 밥이 주인공이고 반찬은 조연인 한식의 패러다임도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쓸데없이 반찬이 많다는 불만도 토로한다. 얼마간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예컨대 김치찌개를 먹을 때는 김치 반찬이 필요한 걸까. 비빔밥을 먹으면서 반찬도 먹어야 하나. 차제에 한 번 자문해보기 바란다. 밥상에 필요 없는 반찬이 너무 많다는 걸 인정하게 될 테니까.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의 깐깐한 비평에 넌덜머리가 날 수도 있겠다. 가령 그는 평양냉면에서 삶은 계란은 국물을 탁하게 만드니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계란 지단을 놓을 것을 주문한다. 평양냉면 마니아에게 냉면그릇 ‘센터’에 자리 잡은 삶은 계란은 화룡점정일 터인데, 이걸 바꾸자고 하니 웬만한 독자라면 뜨악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저토록 까칠한 저자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독자들은 아마도 오늘 저녁 상차림부터 고민하면서 한식의 품격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한식의 요리법이 달라지고 상차림이 바뀐다면 그것은 저자 같은 음식평론가들 덕분일 거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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