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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진 한 장… 52년간 끊긴 혈육 이었다

입력 2017-06-24 05:05:04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서 52년 만에 재회한 이재인·영희씨 남매가 감격의 포옹을 나누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장기실종아동부모모임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건너편에서 ‘장기 실종아동 수사 촉구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장기 실종자에 대한 주민등록 말소 금지, 경찰에 등록된 장기 실종아동 130여명에 대한 전담수사관 배정 등을 요구하며 집회와 1인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신 줄 알았어요.”

지난 15일 서울 강서구의 한 공원에서 만난 이재인(62)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서 52년 만에 동생 이영희(59)씨와 재회했다. 그는 “어머니와 닮은 영희의 얼굴을 보고 ‘내 가족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매는 처음에는 어색한 듯 인사를 건넸지만 이내 부둥켜안고 울었다. 두 사람이 다시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재인씨에 따르면, 영희씨는 만 7세던 1965년 8월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나섰다가 미아가 됐다. 장사를 마친 어머니와 집으로 가다 종로2가 전차 정류장에서 실종됐다. 재인씨는 “어머니가 지갑을 찾으러 잠시 다녀오는 사이에 동생을 잃어버린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서울에 있는 보육원을 모두 돌아다니며 아이들 얼굴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보육원에서 보모로 일하며 딸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재인씨는 “80년대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 여동생의 사진을 가지고 나가 벽에 붙이기도 했다”며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매우 좋아하셨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재인씨의 어머니 최명성씨는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지병으로 숨졌다.

일곱 살 소녀는 집도 어머니도 심지어 제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영희씨는 “어머니와 떨어진 이후 보육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았다”며 “심지어 제 이름과 나이도 확실치 않았다”고 했다.

남매의 재회는 영희씨 아들 덕분이었다. 평소 엄마의 사연을 안타까워했던 아들이 우연히 알게 된 실종아동전문기관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다 엄마와 닮은 어린 소녀의 사진을 보았다. 실종 시점도 비슷했다. 영희씨는 아들이 보여준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영희씨는 50년 만에 가족을 찾으러 나섰다. 경찰서를 찾아가 두 차례 유전자 검사를 거친 끝에 지난달 31일 오빠 재인씨와 남매 사이라는 걸 확인했다. 영희씨는 “52년 만에 제 이름과 나이를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재인씨는 “앞으로는 자주 만나고 함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희씨도 “그동안 제가 알지 못했던 저의 뿌리를 오빠와 함께 찾아 나설 생각”이라고 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장기 실종아동 수는 599명이다. 실종신고 이후 48시간 이내에 찾지 못하면 장기 실종으로 분류된다. 실종아동전문기관 관계자는 “미아를 찾는 데는 초동대응이 중요한데, 과거에는 제도나 시스템이 미비해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종아동을 전담하는 경찰 인력이 늘긴 했지만, 기록도 없이 입양된 경우에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23일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건너편에서 장기 실종아동 부모들이 집회를 열었다. 44년전 만 4살 아들 정훈군을 잃은 전길자(71·여)씨는 “정훈이를 찾지 못한다면 죽을 수도 없다”며 “나의 분신 정훈이를 찾을 수 있게 좀 도와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10월 26개월 된 아들 모영광군을 잃어버린 박혜숙(45)씨도 “저희 소망은 단지 아이들을 찾는 것뿐”이라며 “장기 실종아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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