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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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아침마다 용서하며 시작합시다

입력 2017-06-26 00:05:02


전남 신안군에 임자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교회의 최초 장로는 이판일입니다. 이 장로는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날부터 술과 담배와 도박을 끊었습니다. 토요일부터 가족들과 함께 주일헌금과 입고 갈 옷을 준비하며 철저하게 주일성수를 했습니다.

6·25가 발발했을 때 이 장로는 담임목사를 육지로 피신시켰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목포 보위부까지 끌려가 고문을 당하며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위부원 한 사람이 이 장로를 안다며 석방해 줬습니다. 이 장로는 곧바로 임자도로 돌아와 수요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예배 도중 공산주의자가 된 임자도 주민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성도 35명을 먼저 처형하고 이 장로의 가족 13명을 죽창과 몽둥이로 학살하고 모래 구덩이에 파묻었습니다. 그 중에는 이 장로의 5세 손녀도 있었습니다.

6·25가 끝난 후 이 장로의 아들인 이인재 집사가 해병대와 함께 상륙했습니다. 가족을 죽인 공산주의자들은 체포됐고 이들의 처형을 이 집사가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판일 장로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용서해주어라. 주님이 나와 너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하여라.”

그래서 위대한 용서가 시작됐습니다. 임자도에는 보복 살인이 공식적으로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가장 많이 죽은 이인재가 용서했는데…”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전쟁 후 보복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까.

이인재는 재산을 팔아 빨갱이가 가장 많이 나온 마을에 순교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방학 때면 이곳에 내려와 목회를 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였던 사람들을 집중 전도하고 돌봤습니다. 그들 자녀의 결혼 주례도 섰습니다. 용서 이후, 화해가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인재 목사는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깨지고 터져 모래 범벅이 된 가족들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식을 치르며 속이 많이 상했는데 그 상처가 평생을 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쉬운 것도, 당장의 내 삶에 유익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희생은 물론이고 아픔과 고생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의 용서를 알고 깨달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뉘우쳤느냐 아니냐는 용서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침마다 용서하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그럴 때에 예레미야애가의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3:23)가 ‘내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가 될 것입니다.

이성관 목사(여주성결교회)

※이성관 목사는 고 이판일 장로의 손자이자 이인재 목사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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