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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남준우] 종교인 과세, 정치인이 문제다

입력 2017-06-27 19:15:01


올해는 종교개혁 500년이 되는 해이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나붙었다. 이 격문은 사실 대자보 수준으로 주된 내용은 교황 레오 10세의 성베드로 성당 건축비 충당과 대주교의 사욕이 빚은 ‘면죄부’ 남발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이 무렵, 교황청과 가톨릭교회는 부패한 생활로 인해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이를 해소하고자 레오 10세가 선택한 방법은 ‘면죄부 판매’였다. 면죄부란 쉽게 말해 천국행 티켓으로 면죄부를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신학 교수인 루터가 교황청의 타락을 비판한 이 격문은 엄청난 선풍을 일으키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으니 이 한 장의 고발장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실 종교개혁의 조짐은 루터 이전 시대에 이미 싹 터 있었다. 무리한 십자군 전쟁 이후 봉건사회가 붕괴하면서 시민계급 중심으로 사회 구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였고 부패하여 민중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그 계기라 할 수 있다. 당시 시대 변화의 또 다른 축인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예술과 귀족 중심으로 역사를 변혁하지 못한 반면 종교개혁은 민중의 마음을 포착하여 역사를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최근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그동안 유예되어 왔던 종교인 과세 논란이 한창이다. 이 이슈는 2013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 데서 본격적으로 비롯되었는데 종교계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정치권도 종교계 눈치를 보느라 법안 제정이 이뤄지지 못하였다.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지금도 일부 종교에서 자율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고 종교 활동은 영리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납세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즉 종교활동은 봉사이므로 성직자에 대한 사례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는 공익성을 강조하는 측면이다. 또한 대다수 종교인의 소득이 세금 부과 기준에 미달하므로 실제 세금 수입도 과세 대상 인원에 비해 많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찬성 측에서는 납세 의무는 국민 4대 의무 중 하나로 종교인들도 성직자이기 이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납세를 하지 않는 것은 조세 공평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소액이라도 납세해야 하며, 실제로 OECD 국가 중 종교인에게 납세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란을 거쳐 법안은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여 소득규모에 따라 과세가 면제되도록 차등화하는 방향으로 정하여 영세한 종교단체를 배려하였다. 2015년 12월 법제화되었으나 종교계 반발을 우려해 시행이 2년 늦추어졌다. 그런데 시행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최근 국정기획의 핵심 정치인이 갑자기 준비 미비와 종교시설 사찰 우려를 이유로 2년 더 늦추자고 밝혀 다시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조세저항과 종교갈등을 이유로 종교인 과세에 반대 주장을 펴고 있어 법 시행을 눈앞에 두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초기 일부 종교의 반대가 있었으나 수차례의 공청회 등 의견수렴과 논의를 통해 국회에서 법안 제정과 유예 조치를 거친 이후 이제 국민 정서는 대체로 종교인 과세라는 합일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음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만이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다시 과세 조치를 유예한다면 민중과 종교 간 괴리는 더 깊어질 것이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시대의 흐름을 놓친, 일반 대중과 의식을 달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500년 전의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종교와 민중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종교인 과세는 시작되어야 한다. 종교인 과세, 문제는 정치인이다.

남준우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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