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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곽금주] ‘안아키’로 본 과학에 대한 불신

입력 2017-06-27 18:30:01


건강하게만 커 준다면, 가능하면 약을 쓰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것이 많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몇 년 전 인터넷상에서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안아키) 카페가 개설되었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약도 쓰지 않으며 자연적으로 치유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이다. 한 한의사가 개설한 이 인터넷 카페는 6만여명의 회원을 두고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에 뒤이어 그 타당성에 대한 뜨거운 논박이 있다가 결국 최근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안아키 옹호론자들은 ‘병원이 의도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마치 병을 앓는 것처럼 조장해 약을 복용하고 주사를 맞게 한다’며 의학적 치료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고열을 방치하거나 간장으로 비강을 세척한다. 필수예방접종을 안 시키기도 하고, 아토피에 햇볕만 쬐는 등 극단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의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비상식적인 방법을 치유법이라고 제시하였는데, 이를 따르는 부모가 점차 늘고 있었던 것이다.

자녀의 건강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희생적인 부모가 왜 이런 비상식적인 카페의 열성 회원이 되었을까. 이것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진정한 의술을 중시하기보다 영리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계와 냉담하고 무성의한 의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일상의 환경은 점점 더 유해해지고, 이러한 유해환경에 따른 피해를 온전히 개인이 예방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책임을 오로지 엄마에게만 전가하는 사회의 무책임도 이를 부추겼을 것이다. 한 자녀 시대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익숙지 않은 젊은 엄마가 기댈 곳이 의학계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정보를 구하고 입으로 전해지는 방법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학의 특성도 안아키 논쟁과 관련이 있다.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과학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게 스며들고 그들의 일상적인 결정에 영향을 준다. 과학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은 관련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백신, 기후변화, 줄기세포 연구 등과 같은 복잡한 과학적 이슈들은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대중이 꼭 이해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더 많이 늘어났고 복잡해졌다. 거기에 따르는 지식을 다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대중은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도 안 되고 혼란스러워진다. 합리적인 판단이나 결정이 어려운 과학보다는 결국 주변 사람의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더욱이 사람들은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이슈는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인적 신념의 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결과나 불확실한 정보에 대해서는 더더욱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얀 가운을 입고 설명하는 의사라면 왠지 더 믿을 수 있다는 기존의 신념으로 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의 확실성을 믿게 된다. 결국 대중은 과학적 주장이 확실하지 않다면 신빙성이 없다고 잘못 판단하고 과학에 대한 불신을 가진다. 논쟁이 있을 수 있고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이 과학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우’를 범할 수 있다.

현대 의학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고 모든 것을 다 치료해주지 못한다. 여전히 논쟁 중이거나 실험 중인 것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판단이 더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소중한 아이에게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은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이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에서 당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대 의학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은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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