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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의사들이 쓴 한국 노동현장 보고서

입력 2017-06-30 05:05:03


조선소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직원 A씨는 2014년 여름 건조 중인 선체 안에서 용접을 하다가 돌연사했다. 당시 그는 더위 때문에 기진맥진하다가 구토를 하며 쓰러졌는데, 게워 올린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숨을 거뒀다. 왜 그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일해야 했던 것일까.

당시 스물세 살이던 A씨는 좋은 평가를 받으면 원청업체 취업이 가능한 ‘직영 추천제’ 적용 대상이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작업 현장 ‘반장님’과 나눈 이런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반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 연차 내고 이번 주 쉬고 싶습니다. 절대 다른 뜻은 없습니다.”(A씨) “낼 물량을 보고도? 엿 먹어라 이기네?”(반장님) “출근하겠습니다.”(A씨)

직업환경의학 분야 전문의인 류현철씨는 A씨의 사인(死因)을 분석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맞서야 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에 있다”고.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는 류씨처럼 산업재해 현장을 누비는 직업환경의학 분야 전문의 14명의 글이 담겨 있다. 책에 적힌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들 의사는 “굴뚝 속으로 들어가 질병을 번역하는 번역가”이자 “노동자들의 주검을 탐색하는 탐정”이다.

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잇속만 차리려는 기업들 행태를 고발하면서 노동 현장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용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수두룩한 법망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끔찍한 산업재해로 기록된 현장들을 되짚기도 한다. 의사로서의 사명을 되새기는 내용도 담겼다. 핑크색 산뜻한 표지가 무색하게 여겨질 만큼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다.

의사들이 내놓은 한국 노동현장 보고서라는 점만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띠는 신간이다. ‘에필로그’를 쓴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자본의 본질을 고장 난 노동자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자본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사회의 노력이 진행될 때 우리는 다시 웰빙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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